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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B]청각장애인 윤정기씨 "사법고시 혼자서만 20년 공부…후회 없어요"

시계아이콘02분 45초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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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소수 더나은 비주류 세상

장애벽허물기 비상근 활동가 윤정기씨
오랫동안 발음 고치며 살아와
검정고시 후 혼자서 대입 준비 8년

법대 졸업 후 사법시험 20년 간 준비해와
후배들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했으면
청와대 춘추관에 수어통역 하는 날 왔으면

[사이드B]청각장애인 윤정기씨 "사법고시 혼자서만 20년 공부…후회 없어요" '청각·시각장애인의 재난 및 감염병 안전대책 촉구 기자회견'이 지난달 1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리고 있다. 윤 활동가가 수어로 발언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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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수화 언어(수어) 통역이 제공되지 않았을 때 코로나가 심각해도 어느 정도 인지를 알 수 없었어요. 화면 자막이나 아나운서들의 표정으로 분위기만 짐작할 뿐이죠. 수어는 한국어와 동등한 공용어예요. 더 많은 곳에서 수어 통역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 인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안부를 묻는 말이었다. 코로나19 정례 브리핑에 이제는 수어통역사가 함께 나오면서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이번 브리핑에 수어통역사가 등장하기까지는 브리핑을 시작하고도 약 한 달여 시간이 걸렸다. 일부 방송사는 '깔끔하지 않다'며 수어통역사를 화면에서 빼고 내보내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요즘엔 화면 속에서 수어통역사의 얼굴과 손을 실물 크기 그대로 볼 수 있다. 과거 화면 속 수어통역사는 언제나 작은 타원에 갇혀 있었다. 자막도 없는, 그 작은 공간 속 통역사의 손과 표정을 통해 정보를 전달 받아야 하는 농인들은 도대체 시력이 얼마나 좋아야 할까.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장애벽허물기) 비상근 활동가인 윤정기(54)씨와 강서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윤씨가 수어로 이야기를 하면 수어통역사이자 같은 단체 상근 활동가 김철환씨가 통역을 했다.


[사이드B]청각장애인 윤정기씨 "사법고시 혼자서만 20년 공부…후회 없어요" '청각·시각장애인의 재난 및 감염병 안전대책 촉구 기자회견'이 지난달 1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리고 있다. 윤정기 청각장애인 활동가가 수어로 발언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윤씨는 수어를 하면서도 정확한 발음으로 단어들을 말했다. 그는 "발음이 부정확할 수 있어서 오랫동안 발음을 고치면서 살아왔다"며 "입모양을 보고 단어를 배우게 되는데 어릴 때부터 해와서 발음 교정하는 것에 익숙하지만 지적을 받을 때마다 뜨끔 뜨끔하다"고 했다. 본인은 분명히 본 대로 그대로 썼지만 "틀렸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표적인 단어가 '한라산'이다. 사람들의 입 모양은 '할라산'인데 한글 표기는 '한라산'이었다.


윤씨는 어머니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일반 초·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재학 중 더 이상은 힘이 들어 자퇴를 했다. 뒤늦게 농학교에 입학해 수어를 배웠지만 이마저도 적응이 어려워 학교를 그만뒀다. 수어를 너무 늦게 배웠다는 한계도 있었지만 농학교에선 원하는 것을 할 수 없었다. 한 번은 농학교에서 진로 상담을 했는데 선생님께 물리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농학생은 진학하기 어려울 것이란 답변이 돌아왔다. "실험도 해야 하는데 듣지 못 하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이 선생님의 의견이었다. 실험 물리 뿐만 아니라 이론 물리도 있는데 왜 안 되냐고 묻자 "그냥 포기해라"고만 얘기했다고 한다. 윤씨의 당시 꿈은 물리학자였다.


검정고시를 선택한 윤씨는 대학에 가기 위해 무려 입시 시험을 6번이나 치렀다. 준비 기간은 8년이었다. 8수를 한 끝에 법대에 들어갔다. 입시를 준비하면서 법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농인권, 장애인 인권에 관심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수어 통역·자막 지원해야
소통 문제 해결되면 여러 분야 진출 가능해져
장애인 지원은 비장애인들을 위한 혜택이기도
장애인·비장애인 구분 없는 행복한 세상 꿈 꿔

그러나 대학에서는 혼자의 힘만으로 현실의 벽을 뛰어 넘기가 쉽지 않았다. 법대를 졸업한 윤씨는 20년 동안 사법시험을 준비했지만 학원에 한 번 갈 엄두도 내지 못 했다. 윤씨는 "대학에서부터는 혼자서 공부를 해야 했다"며 "학원은 아예 수어 통역이 되지 않으니 갈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3시간 강의에 100페이지씩 나가는 진도를 따라가는 일은 버거웠다. 옆에 앉은 친구들이 줄 그어준 책을 보고 메모해준 노트를 갖고 서야 겨우 이해를 할 수 있었다. 한국 수어는 한문이 없다. 그는 2016년 사법시험이 폐지될 때까지 시험을 쳤다. 한 번도 1차를 통과하지 못 했지만 후회는 없다.


[사이드B]청각장애인 윤정기씨 "사법고시 혼자서만 20년 공부…후회 없어요"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등 단체가 주최한 청각장애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 (제공=장애벽허물기)


"저는 이제 나이가 많지만 후배들이 대학에 입학해서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어요. 수어 통역이나 자막 같은 게 수업에서 제공된다면 더욱 공부하기 나은 환경이 되겠지요."


농인들은 어렵게 대학에 들어가도 중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고등교육 이수가 쉽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생활을 하는 농인들이 많다. 윤씨의 손이 갑자기 빨라졌다. 윤씨는 "수어 통역 문제가 해결되면 농인들도 다방면에 걸쳐서 여러 직업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며 "소통 문제가 해결 되지 않아 진출할 수 있는 분야가 여전히 한정적"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대부분 대학에서 원격수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청각장애 대학생들의 경우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수어 통역이나 자막이 영상에 거의 나오지 않을 뿐더러 근로장학생이 도와주긴 하지만 전문 속기사도 아니고 통역사도 아니다 보니 자세한 통역이 되지 않아 불편함을 겪고 있다고 한다.


윤씨가 몸 담고 있는 장애벽허물기는 농인들의 인권 신장을 위한 활동들을 많이 해왔다. 이번 중대본 브리핑에 수어통역사가 없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도 냈다. 지난달 3일 진정을 접수하고 한달여가 지난 이달 4일 비로소 수어통역사가 화면에 등장했다. 그는 "정부와 지자체 브리핑에 수어 통역을 제공하라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는데 청와대 춘추관에도 수어통역사를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장애인들을 위한 여러 지원은 꼭 당사자 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윤씨는 강조했다.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저상버스 등은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만들었지만 임산부나 노인, 아이가 있는 사람 등 교통약자 모두에게 편의를 제공한다.


[사이드B]청각장애인 윤정기씨 "사법고시 혼자서만 20년 공부…후회 없어요" 김정숙 여사가 지난해 열린 제39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개회식에서 수화로 인사하고 있다. 김 여사는 "틀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릅니다. 못 하는게 아닙니다. 자신만의 방식대로 하는 것입니다"를 수화로 전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농인에 대한 차별적 인식은 많이 개선됐다고 한다. 윤씨는 "예전엔 길에서 수어로 대화하면 신기한 표정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최근엔 인권 의식이 성장하면서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영상 통화가 도입되면서 길에서도 수어로 통화하는 농인도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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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씨는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함께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그런 세상을 꿈꾼다. "장애인이 어느 정도 잘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복지국가의 척도가 정해진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은 장애인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이 어느 정도 갖춰졌는지 (물어본다면)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누구라도 몸으로 직접 느끼는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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