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백종민 특파원] 뉴욕을 부르는 다양한 이름이 있다. '빅 애플(Big Apple)' '엠파이어 스테이트(Empire State)'는 뉴욕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두 별명이 뉴욕의 희망을 상징한다면 전혀 반대되는 별칭도 있다.
바로 '고담시(Gotham City)'다. 고담시는 만화와 영화로 잘 알려진 '배트맨'에 등장하는 가상의 도시지만 뉴욕을 본뜬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고담시는 현실에도 존재한다. 뉴욕에서는 고담시라고 쓰인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고담은 중세 영어에서 염소를 의미한 단어라고 한다. 수백 년 전 뉴욕에서 염소를 많이 키웠기 때문에 생긴 별명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신의 저주(God Damn)라는 뜻을 우회적으로 적은 것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그래서인지 배트맨에서 고담시는 온갖 범죄가 창궐하고 악당들이 장악한 악의 도시로 그려진다. 조커, 펭귄, 베인 등 수많은 악당이 이 도시를 파괴하기 위해 잔인한 범죄와 약탈을 일삼는다. 심지어 한 악당은 고담시에 바이러스를 퍼뜨리려 한다. 배트맨이 등장해서야 비로소 질서가 잡혀가는 게 고담시의 현실이다. 저주받은 도시라고 불리기에 충분하다.
지금 뉴욕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실제로 고담시가 되고 있다. 감염 공포와 자택 대피령으로 거리에서 사람들은 사라졌고 병원마다 코로나19 환자로 가득 찬 상황은 공포를 자극한다.
세계 경제ㆍ문화의 중심 뉴욕이 코로나19의 청정지대가 될 것이라 생각지는 않았지만 상황은 우려를 뛰어넘고 있다. 불과 한 달 전 한국에서 온 이들에게 "한국 탈출을 환영합니다" 하고 말하던 곳이 뉴욕이었다.
뉴욕시가 포함된 뉴욕주는 미국 최대의 코로나19 '핫스팟'이다. 어느새 2만명(뉴저지주를 포함하면 2만3000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미국 최대의 도시이고 860만명이 거주하는 뉴욕은 이제 주 방위군이 투입돼 상황을 정리해야 하는 비상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지금 뉴욕의 상황은 히어로가 아니라 그 어떤 영웅의 등장이라도 필요하다. 뉴욕발 경제 위기는 전 세계 금융시장을 초토화할 수 있다. 세계 경제의 중심지 뉴욕이 감기에 걸리면 전 세계는 중병이 들게 된다. 워싱턴DC의 위기는 정치에 그칠 수 있지만 뉴욕의 위기는 지구촌 전체 경제와 우리의 삶을 뒤흔들 수 있는 뇌관이다.
최근 뉴욕 금융시장에서 유동성이 부족해진 금융사들이 금과 미 국채까지 팔아치우며 달러 확보에 나서자 전 세계 환시장에서 달러 가치가 치솟은 현상은 뉴욕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미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야심 차게 히어로를 자처하며 무제한 양적완화(QE)와 제로 금리라는 무기로 바이러스의 공포에 맞섰지만 힘이 달린다는 것이 확인됐다. 뉴욕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하던 유명 셰프도 손님이 없어 실업수당 청구 대열에 서야 하는 상황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 그리고 쿠오모 주지사와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연이어 해법을 두고 갈등 중이다. 한쪽은 신속한 상황 대처를 요구하고 다른 한쪽은 버티다가 상황이 악화하면 뒤늦게 조치에 나서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 사이 뉴욕은 더욱 고담시에 가까워 간다.
과연 뉴욕을 구원할 히어로는 어디에도 없는 걸까. 그냥 시간이 해결해주길 기다리기에는 상황이 긴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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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떨어지고 있다"고 현 상황을 표현하며 바이러스를 내뿜는 환자들을 치료하겠다고 달려든 의사들에게 겨우 마스크 몇 장을 쥐여주고 영웅인 척하는 히어로라면 사양하고 싶다.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시민을 위하는 진정한 정치인은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건 매한가지인가 보다.
뉴욕=백종민 특파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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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고담시가 된 뉴욕](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0032413000738608_1585022408.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