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2018년 11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을 맞이한 프랑스에서 한 참전용사에 대한 평가로 뜨거운 논란이 일었다. 1차대전 당시 프랑스의 영웅이자 육군원수로 혁혁한 공을 세운 앙리 필리프 페텡(1956~1951)이 그 주인공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종전 100주년에 그를 영웅으로 기리고자 했다. 그래서 자기 의견을 방송에서 밝혔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의 뜻은 프랑스 국민의 강한 반발 앞에 무산됐다. 국민들이 반발한 것은 페탱 장군이 2차대전 당시 보여준 실망스러운 행적 때문이다. 그는 1차 대전의 영웅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2차대전 중 나치 독일에 굴욕적으로 항복하고 꼭두각시 비시정부의 수장이 됐다. 우리로 치면 인생 전반부는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이었으나 후반부는 매국노 이완용 취급을 받게 된 셈이다.
'레지스탕스 프랑스'는 이런 경계선상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책이다. 페탱 장군 말고도 1,2차 대전을 모두 겪은 20세기 초반 프랑스의 군인과 정치인들 가운데 두 대전 사이 평가가 극적으로 바뀐 인물이 꽤 많다. 프랑스가 2차대전 중 나치독일에 점령당한 기간은 고작 4년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영웅에서 역적으로 전락하고 과거사 자체가 세탁된 인물도 있다.
레지스탕스 프랑스의 저자인 이용우 교수가 주목하는 것은 과거사 청산이 아니다. 단순한 시시비비 가리기로 단죄해야 할 매국노를 끄집어내는 게 아니다. 저자는 2차대전 이후 현재까지 정치권의 변동, 사회와 문화의 변화 속에서 레지스탕스와 비시정부에 대한 인식과 시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주목한다. 실제로 각 개인이 벌인 활동과 진실보다는 정부가 출간해온 교과서와 영화같은 미디어가 얼마나 많은 사실들을 포장해왔으며 그것이 대중의 인식을 어떻게 바꿔왔는지 보여준다.
책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인물은 프랑스 역사상 최장 임기를 자랑하는 대통령이자 좌파 정당인 사회당이 배출한 최초의 대통령이었던 프랑수아 미테랑(1916~1996)이다. 그때까지 알려진 미테랑 대통령의 젊은시절 이력은 2차대전 당시 징집돼 전쟁터에서 나치 독일군과 전투를 벌이고, 패전 후 나치 독일군의 포로가 됐다가 가까스로 탈주해 레지스탕스에서 활동했다는 것이다.
미테랑 대통령은 늘 자신의 레지스탕스 이력을 자부했다. 이는 그의 정치적 기반이기도 했다. 그러나 1994년 프랑스 언론인 피에르 페앙은 미테랑 대통령이 알려진 것과 달리 나치 독일군 수용소에서 6개월간 수감됐다 풀려났으며 이후 레지스탕스에 가담한 게 아니라 비시정부에서 근무했다고 폭로했다. 이로써 미테랑 대통령은 과거사 논쟁의 주인공이 됐다. 좌파정당의 수장이 나치독일에 협력한 극우 독재정부의 하수인으로 일했다는 사실은 큰 논란을 불렀다.
역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교과서, 영화, 미디어 매체를 통해 언제나 프랑스 사람들 위주로 알려졌던 레지스탕스 요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유대인이거나 폴란드 같은 외국 출신이었으며 정작 진짜 프랑스인은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당시 프랑스인 모두가 레지스탕스이거나 그 협력자는 아니었다. 나치주의자도 있었고 비시정부에 협력하거나 아니면 이중스파이 노릇을 하는 등 꽤 다양한 진영으로 이뤄져 있었다. 프랑스 전체 인구의 1% 내외만 레지스탕스에 가담했다는 점도 새롭게 밝혀졌다.
2차대전 종전 이후 비시정부에 대한 평가도 정치권의 변화와 함께 계속 달라졌다. 종전 직후 비시 정부의 노력으로 프랑스가 큰 인명피해 없이 온전히 독립할 수 있었다는 여론이 강했다. 비시 정부의 수반이었던 페탱 장군이 방패로, 프랑스의 독립을 이끈 샤를 드골 장군(1890~1970)은 창으로 묘사되며 두 사람 모두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칭송받았다. 하지만 드골 장군이 집권하면서 페탱 장군은 매국노로 전락하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1차대전 당시 페탱 장군은 드골 장군의 상관이었다. 드골 장군이 가장 존경했던 상관도 페탱 장군이었다.
사실 비시정부도 완전히 매국노와 비겁한 겁쟁이들로만 구성됐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1차대전 당시 얼마나 많은 프랑스 청년이 희생됐는지 몸소 겪은 사람들이었다. 끝없는 소모전 속에 1차대전으로 프랑스 청년 30% 이상이 사망했다. 1914년 전후 출생한 아이들 중 아버지 얼굴을 아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이후 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많았던 프랑스는 독일에 밀리기도 했다.
2차대전 당시 이런 끔찍한 기억을 안고 있던 프랑스군 수뇌부와 프랑스 정부는 빠르게 항복했다. 그 덕에 프랑스의 인명피해는 다른나라들보다 적을 수 있었다. 그러나 비시정부에 협력했던 인물들은 전후 완전히 매국노로만 낙인 찍혔다. 전쟁 중 행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던 인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레지스탕스에 가담해 지하에서 투쟁했다고 스스로를 포장했다.
흑백논리만으로는 매국노인지 애국자인지 판단할 수 없는 이중스파이들, 수차에 걸쳐 전향하며 살아남은 인물들, 또는 너무 어려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른 채 특정 사상을 강요당했던 사람들까지 모두 그저 '매국노'란 한 단어로 인생이 압축됐다. 이 모든 게 고작 4년간의 나치 점령기에 벌어진 일이다. 이보다 9배나 긴, 한 세대가 바뀐 36년이란 긴 시간 동안 일제강점기를 겪은 우리나라에서는 과거사 청산문제가 프랑스보다 훨씬 더 복잡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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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우리보다 그나마 덜 복잡한, 나치점령기 과거사 청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프랑스로부터 우리의 과거사 청산문제를 다시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아무리 복잡한 문제가 산재해있어도 과거사 논쟁을 벌일 수 있는 현재 이 시간이 소중하다고 이야기한다. 왜곡된 형태로 교육되고 있는 잘못된 과거사에 대한 신화들도 문제다. 하지만 오히려 제대로 청산조차 하지 못한 이 시점부터 미래세대에게 그저 망각의 대상이 됐다는 점은 더 슬픈 현실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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