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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권력과 폭력의 유착...남겨진 자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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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아이리시맨'
거장 감독·배우들이 그린 '케네디 시대' 미국의 뒷면
후회와 자기 고백들 "어쩔 수 없어요"

[이종길의 영화읽기]권력과 폭력의 유착...남겨진 자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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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부터 늘 갱스터가 되고 싶었다. 내게 갱스터는 미국 대통령보다 더 멋졌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좋은 친구들(1990)' 도입부에 나오는 헨리 힐(레이 리오타)의 내레이션이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아이리시맨'도 비슷하게 문을 연다.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 니로)의 내레이션으로.


"어릴 때 난 페인트공이 집을 칠하는 사람인 줄 알았어. 내가 뭘 알았겠나? 난 노동자였어. 필라델피아 남부 트럭 노조 107지부 교섭 위원이었지."


자기 고백


두 내레이션은 성격이 다르다. 힐의 고백은 푸념 또는 부대끼는 감정의 토로다. 영화 말미에 찬란했던 순간이 그리운 듯 처량한 신세를 한탄한다. "난 이제 아무 것도 아니다. 남은 여생을 평범한 얼간이처럼 살아야 한다."


그는 지미 콘웨이(로버트 드 니로), 토미 드비토(조 페시)와 못된 짓을 일삼으며 끈끈한 우정까지 느낀다. 그러나 케네디공항 화물터미널에서 수백만 달러나 훔친 뒤 누구보다 그들을 불신하고 경계한다.


[이종길의 영화읽기]권력과 폭력의 유착...남겨진 자는 말이 없다


시런의 인생은 힐의 인생과 흡사하다. 스승 격인 러셀 버팔리노(조 페시), 전미트럭운송조합 위원장 지미 호파(알 파치노) 등과 돈독한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그는 버팔리노와 호파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자 양자택일의 기로에 선다. 같은 목적을 위해 뭉치면 좋은 친구들. 목적이 달라지면 남보다 못한 적이다.


시런은 좀처럼 내색하는 법이 없다. 호파 살해 뒤에도 담담한 얼굴로 빌 버팔리노(레이 로마노) 딸의 결혼을 축하한다. TV에서 호파가 실종됐다는 뉴스를 접하고도 동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호파를 따랐던 딸 페기 시런(안나 파킨)이 등 돌리자 자기의 행동에 대해 후회한다. "내 딸 페기는 사라졌어. 그날 내 인생에서."


그래서 시런의 내레이션은 숨김 없는 자기 고백이다. 기력까지 쇠한 노인이 되어서야 내면 성찰에 다가간다. 버팔리노도 마찬가지다. 교도소에서 폭삭 늙어버린 뒤에야 호파를 그리워한다. "좋은 친구였지. 가족도 화목했고. 결코 그렇게 되길 바란 적이 없다네. 난 그저 그 친구 대신 우리를 택한 거야. 엿 먹으라지. 모두 다."


시대의 요구


시런은 막내 페기가 등을 돌리자 셋째 딸 돌로레스 시런(마린 아일랜드)을 찾아간다. "(페기에게) 전화 좀 해봐. 얘기하고 싶어서 그래."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요?" "그냥 사과하고 싶은 거야." "왜요?" (중략) "너희는 안전했잖니. 내가 보고 경험한 걸 겪진 않았으니까. 세상에는 나쁜 놈들이 많아. 달리 어쩌겠니?"


[이종길의 영화읽기]권력과 폭력의 유착...남겨진 자는 말이 없다


'나쁜 놈들'은 버팔리노가 언급한 '모두 다'와 일맥상통한다. 그들이 목격한 미국의 역사다. 시런과 버팔리노는 존 F. 케네디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불철주야로 노력한다. 그런데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존 F. 케네디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는 자기 형을 백악관에 앉힌 이들까지 압박하기 시작한다. 물론 집중 수사 대상은 닉슨에게 노조 자금 50만달러를 건넨 호파였다.


시런은 호파를 도우면서 버팔리노 명령도 따른다. 미국 정부가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정부를 전복하려고 훈련시킨 쿠바 출신 망명자들에게 무기를 배달한다. 미국은 그렇게 준비한 '피그스만 침공'에서 완패했다.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까지 건설해 일촉즉발 위기를 맞았다. 존 F. 케네디는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과 타협하지만 1년여 뒤 암살됐다.


마피아 조직원들은 슬퍼하지 않는다. 시런의 설명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마피아는 조 케네디의 아들을 쉽게 대통령으로 당선시켰어. 그가 일리노이에서 승리하도록 투표를 조작했거든. 새 대통령은 그 대가로 쿠바에서 카스트로를 내쫓기로 했어. 우리가 카지노와 경마장, 새우잡이 배는 물론 아바나에서 소유했던 다른 모든 것도 되찾게 말이야.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이종길의 영화읽기]권력과 폭력의 유착...남겨진 자는 말이 없다


노동운동에 투신한 호파 또한 민주당만큼 마피아의 힘을 이용했다. 사업을 확장하면서 검은 돈까지 쓰고 가끔 주먹도 빌렸다. 권력과 폭력의 유착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시대의 요구였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이를 받아들인 대다수가 콘웨이나 드비토처럼 총 맞거나 비참하게 죽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가 목격한 미국 사회의 이면이다. 호파가 실종되면서 희미해진 아픈 기억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어요"


시런은 딸들에게 버림 받고 관을 사러 간다. "끌리는 거 있어요?" "초록색으로 하지." 자기의 정체성을 뒤늦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그는 자기를 아일랜드 출신이라고 소개하는 법이 없다. 대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이탈리아에서 싸웠던 이력을 들먹인다. 어쩌면 당연한 자세다. 버팔리노는 이탈리아 출신 마피아. 호파는 아일랜드 출신 존 F. 케네디를 싫어한다.


정체성 회복은 내면적인 성찰과 자각을 수반한다. 시런은 뒤늦게 죄의식에 사로잡힌다. 이따금 밤의 어둠과 고요가 몰고 오는 감정이 아니다. 고즈넉이 눈을 감으며 깨닫는 회한이다. 그는 용서를 구할 길이 있는데도 외면한다. 그저 신부 앞에서 기도할 뿐이다.


[이종길의 영화읽기]권력과 폭력의 유착...남겨진 자는 말이 없다


"과거의 행동에 대해 뭔가 느껴지시나요?" "아니, 아마도 그건…. 내가 여기서 자네한테 털어놓는 건 노력해보려는 거니…." "하지만 아무 감정도 안 느껴지시나요?" "그렇네. 지나간 일이지." (중략) "뉘우칠 순 있죠. 진심이 아니더라도 뉘우칠 순 있어요. 의지를 결심하려고 말하는 거죠. '주님,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그게 의지의 결단력이죠." "대체 어떤 사람이 그런 전화를 하겠나?" "무슨 말이에요? 어떤 전화요?" "말 못하네. 못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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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끝까지 호파의 가족에게 용서를 빌지 않을 것이다. 병실을 떠나는 신부에게 문을 조금 열어두라고 부탁하는 게 그런 마음의 표현이다. 시런은 자기를 믿고 침실 문을 열어뒀던 호파의 믿음을 저버렸다. 이제는 스스로 그렇게 죽음을 맞으려고 한다. 왜 그러냐고? 이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대사가 답일 수 있겠다. "어쩔 수 없어요."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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