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시설 입소 못하는 거리 노숙인들
거리 내몰린 트라우마 극복, 정서적 지원 절실
서울역 광장서 한 노숙인이 앉아 잠시 숨을 돌리고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허미담·김수완 인턴기자] [편집자주] 자칫 사소한 것으로 보일 수 있는,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큰일로 여겨지는 '그것'을 포착해 전해드립니다.
"시설도 좋지만 혼자가 편합니다"
서울역 광장에서 만난 노숙인 김모(61)씨는 "노숙인 쉼터 등 복지시설에 왜 들어가지 않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올해로 십수년째 노숙인 생활을 하고 있다. 가족과 크고 작은 다툼이 지속해 가정불화로 이어졌고, 결국 가정은 해체됐다.
그는 다른 노숙인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끼니를 어떻게 이어가냐"는 질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구세군에서 밥을 준다"며 "쉼터보다 길 위에서의 생활이 더 편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같은 얘기를 계속해서 반복하는가 하면, 시선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등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서울시가 서울시복지재단, 서울노숙인시설협회와 공동으로 시행한 2018년 노숙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의 노숙인 숫자는 3,478명이다.
거리 노숙인은 731명, 시설 노숙인은 2,747명이었다. 남성 2,741명, 여성 732명, 거리 노숙인 중 침낭이나 이불에 숨어 있어 성별 파악이 어려운 '성별 미상'은 5명이다.
노숙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부채 증가로 인한 신용불량 또는 파산 24.1%, 이혼 등 결혼 관계 해체 12.8%, 알코올 의존 11.1% 등으로 나타났다.
서울역 광장서 만난 한 노숙인이 먹다 만 라면. 그는 라면과 복지단체들이 무료로 제공하는 식사로 끼니를 이어가고 있었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보건복지부(복지부)에서는 노숙인의 보호·재활·자립 기반 조성을 위해 2012년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노숙인 자활 목적의 시설을 지속해서 늘렸다.
정부에서 관리하는 노숙인 생활시설은 전국 57개소,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는 재활센터는 60개소다.
문제는 시설에 입소하지 않거나, 다른 이유로 입소를 못 하는 거리 노숙인들이 여전히 많다는 데 있다. 노숙인 생활에서 자립할 수 있는 첫 단계인 각종 시설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역 광장에서 만난 거리 노숙인 대부분은 시설 입소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한 60대 노숙인 A 씨는 "시설에 꼭 가야 하는 이유가 있냐"면서 "시설도 가봤고 길에서도 있어 봤는데, 여기가 더 편하다"고 강조했다. A 씨 옆에 있던 70대 B 씨는 "그냥 좀 우리를 놔뒀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이어 "시설을 안 가는 이유가 있으니 안 가는 것 아니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60대 노숙인 C 씨는 "혹시 시설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가 있냐"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서울역 광장의 거리 노숙인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복지부가 2017년 우울증 평가도구를 활용해 2000여 명 노숙인의 정신 상태를 점검한 결과 거리 노숙인의 52%가 우울증 판정을 받았다.
몸이 아플 때 의료시설 이용과 관련해 길거리 노숙인의 31%가 '병원에 가지 않고 참는다'고 답했다. 경제활동 참여는 취업자가 전체의 36%,미취업자는 64%로 나타났으며 미취업자 가운데 76.2%가 근로능력이 없다고 답했다.
거리 노숙인 수는 2014년 1138명에서 2016년 10월 1522명으로 늘어났다.
각종 자활시설 마련, 주거·생활비 지원 등 정부의 노력에도 거리서 끼니를 이어가거나 잠을 자는 노숙인이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시설 입소를 돕거나 거리 노숙인들의 정서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는 시설 입소를 통한 사회 구성원 복귀를 위해서라도, 거리 노숙인의 정신적·정서적 회복에 보다 더 집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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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복지 사업 관계자는 "거리 노숙인들의 심리적·정서적 지원을 통해 시설 입소로 한 발 내딛게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특히 '학습된 무기력' 경험에서 하루빨리 나오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그들이 노숙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트라우마 극복, 자존감 회복 등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허미담 인턴기자 damdam@asiae.co.kr
김수완 인턴기자 suw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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