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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이트] 서예지, 눈빛에 서린 광기...'블랙 스완' 니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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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전' 서예지

[라임라이트] 서예지, 눈빛에 서린 광기...'블랙 스완' 니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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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 잠이 든 박미정(서예지).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어두컴컴한 극장에 홀로 남았다. 여기저기 더듬거리며 출구를 찾는다. 등 뒤에 인기척이 있다. 무심코 돌아서자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여인이 서 있다. 그녀는 한발 물러나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다.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 달아난다. 막다른 곳에 몰려 기겁하는데 비명이 나오지 않는다. 모든 것이 꿈이었다. 박미정은 곧장 책상으로 달려가 안경을 쓴다. 꿈을 떠올리며 시나리오를 쓴다.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는다. 공포 서적을 뒤적이고, 관련 영화도 틀어보지만 소용없다.


영화 '암전'은 공포물의 외피를 쓴 성장 스릴러다. 박미정은 매일 창작욕을 불태우지만 성과를 내지 못한다. 별다른 진척 없이 원점으로 돌아가기 일쑤다. 극도의 불안과 스트레스로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린다. 그녀는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면서 내면에 숨은 강한 악마성을 드러낸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영화 '블랙 스완' 속 니나(나탈리 포트만)와 흡사하다. 정교한 기술을 자랑하는 발레리나. 관능적인 매력을 뽐내는 릴리(밀라 쿠니스)와 비교되면서 압박과 불안에 사로잡힌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내면에 숨은 어두운 면을 표출한다.


배우 서예지는 박미정을 연기하면서 니나의 감정 흐름을 많이 참고했다. 소문만 무성한 공포영화를 찾는 과정을 절실하게 표현했다. "암전에서 가장 큰 공포는 광기죠. 어떤 장애도 뛰어넘을 만큼 강한 의지를 보여요. 그 세기를 순차적으로 전개하는데 주안점을 뒀어요. 능동적이고 진취적으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미친 듯이 날뛰죠. 재미있었어요.“


[라임라이트] 서예지, 눈빛에 서린 광기...'블랙 스완' 니나처럼


미쳐가는 얼굴만큼 중요한 대목이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 면면의 조화다. 영화가 극적 반전을 꾀하므로 다양한 감정 변화로 경계를 모호하게 해야 한다. 블랙 스완에서 나탈리 포트만은 극심한 감정 기복을 보여준다. 니나가 집에서 환영에 시달리는 신이 그러하다. 손을 닦으며 주위를 둘러보는 얼굴에서 불안과 분노가 동시에 나타난다. 니나는 환영을 마주하자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한다. 어머니(바바라 허쉬)의 방에서 다시 만날 때는 그림들을 찢으며 분노한다. 어머니가 나타나자 자신의 방으로 황급히 가서 문을 걸어 잠근다. 신경질을 부리다가 등이 아파 괴로워한다.


암전에는 이 만큼 감정 기복을 표현하는 신이 없다. 하지만 복잡한 감정을 요구하는 상황은 여럿 있다. 김재현 감독(진선규)이 폐쇄된 극장에서 귀신이라 생각하는 박미정을 의자에 묶어 살해하려는 신이 대표적이다. 박미정은 떨리는 목소리로 간청한다. "집에서 하드 훔쳐온 거 미안해요. 사과할게요." 김재현 감독이 무시하자 그녀는 역정을 낸다. "나 암전에 대해서 다 알아요. 모두 그 여자 짓이죠?" 반응이 없자 박미정은 마음을 가라앉힌다. 조목조목 상황을 설명하다가 야속함과 분함이 북받쳐 올랐는지 욕설을 한다. "나 감독님이 한 짓이 아닌 거 다 알아요. 그러니까 그 짓 그만하고, 같이 나가자고요. 내가 나가서 사람들한테 다 설명할게요. 감독님은 아무 죄 없다고 다 설명할게. 이 XXX야.“


[라임라이트] 서예지, 눈빛에 서린 광기...'블랙 스완' 니나처럼


이 장면에서 돋보이는 연기는 말투나 행동이 아니다. 눈빛으로 다양한 감정을 보여준다. 서예지가 철저하게 계산한 표현이다. "김진원 감독이 사실적인 연기를 주문했는데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눈빛으로 여러 감정을 변주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어요. 달라지는 눈빛만큼 확실한 감정 표현은 없으니까요. 시시각각 눈에 다른 감정을 실으니까 말투나 행동도 알아서 다채로워졌어요.“


그녀는 박미정이 떠오를 만큼 연기에 집착한다. 암전에서는 모든 장면을 대역 없이 표현했다. 대역 배우는 매번 시연만 하고 돌아가야 했다. "솔직히 힘들죠. 체력이 따라 주지 않아 중도에 포기하고 싶을 적이 여러 번 있어요. 많이 지쳐서 다치기도 했고요. 숙소 화장실 문이 미닫이였는데, 그 아래 틈새에 발가락이 끼어 벌러덩 뒤로 나자빠졌죠. 다리뼈에 금이 가서 대역 배우를 찾았는데, 부탁할 수 없었어요. 다음 날 촬영이 대부분 롱테이크(쇼트가 편집 없이 길게 진행되는 방식)였거든요(웃음).“


[라임라이트] 서예지, 눈빛에 서린 광기...'블랙 스완' 니나처럼


서예지는 편의점 앞에서 지윤호(김준서 역)와 대화하는 신에서 맥주 네 병을 마시고 연기했다. 두 뺨에 발갛게 홍조가 퍼져야 한다는 이유였다. "제작진이 보리차를 담아 건네줬는데 거절했어요. 취했을 때만 나올 수 있는 표현이 필요했거든요. 어눌한 말투와 뜬금없는 소리, 신세한탄, 광기 같은 거요. 정말 취했던 것 같아요. 영화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턱 밑으로 질질 흘리거든요(웃음). 공포영화는 클로즈업 샷이 잦아서 신경을 쓸 부분이 많아요. 눈에 서는 핏줄까지 준비해야 하죠. 컴퓨터그래픽으로는 그 느낌을 절대 살릴 수 없어요.“


그녀의 계산된 연기는 암전을 다르게 해석할 여지를 남긴다. 귀신이 되어 나타나는 순미(조아라)가 박미정의 허상이라는 가정이다. 이 경우 어린 시절 손목에 생긴 상처는 애초 없던 것이 된다. 블랙 스완 속 니나의 등에서 솟아오르는 흑조의 깃털처럼. "김진원 감독에게 손목의 상처를 자주 보여주지 말자고 부탁했어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리라 생각했거든요. 자신이 있었아요. 제 얼굴 생김새가 변화를 주기에 꽤 좋거든요(웃음). 감정을 조금만 달리 해도 전혀 다른 사연을 가진 배역으로 변하죠. 영화 '다른 길이 있다', 드라마 '구해줘' 등 우울한 작품을 많이 해서 능숙해졌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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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이트] 서예지, 눈빛에 서린 광기...'블랙 스완' 니나처럼


때때로 로맨틱코미디 속 주인공을 상상하지만, 바람일 뿐이다. 장르보다 배역을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밝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 욕심은 없어요. 비슷한 배역이라도 다르게 접근하면 아주 다르게 나타날 수 있거든요. 어두운 역할을 많이 해서 힘들기는 해요. 실제 성격이 비슷하게 따라가는 것 같더라고요. 집에서 혼자 있다 보면 우울해지죠. 그렇다고 굳이 그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지는 않아요. 아직 할 만합니다(웃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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