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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통 판사' 천종호 "3분에 1명 선고, 컵라면 재판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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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갑 찬 소년 품어줄 사회는 없나]<9>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소년범 대부 천종호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인터뷰

'호통 판사' 천종호 "3분에 1명 선고, 컵라면 재판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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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부산)=유병돈 기자] "재판이 안 됩니다, 재판이…. 3분에 1명 선고하는데 애들이 반성할 시간이 됩니까?"


베테랑 판사의 단호함 속에는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다. 2010년 2월부터 8년 동안 소년부만 맡았던 천종호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소년 범죄에 있어 국내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다. 2017년 국정감사 당시 그는 "퇴직하는 그 순간까지 소년보호 재판을 맡고 싶다"고 선언해 많은 이들로부터 찬사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법원 순환보직 원칙에 따라 소년부를 떠나 현재는 형사부에서 형사재판을 맡고 있다.


아시아경제가 만난 천종호 판사의 목소리는 우리나라 소년 재판의 열악한 현실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커지기 시작했다. 그는 "소년 재판에서 아이 1명당 배당되는 시간은 3분 안팎"이라며 "이마저도 인적사항을 묻고 범행 유무ㆍ반성 여부 등을 듣고 나면 훌쩍 지나간다. 사실상 저지른 죄에 반성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바로 선고를 내려버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천 판사 말대로 소년 재판은 '번갯불에 콩 볶기'식으로 진행된다. 인력 문제 등 열악한 요인 탓에 1~2주에 한 번 꼴로 열리는 재판에서 법정에 서는 아이는 100여명에 달한다. 재판이 진행되는 6시간 동안 100여명의 아이들에게 선고를 내려야 한다. 이에 대해 천 판사는 "누군가 '컵라면 재판'이라고 말하더라"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일본의 경우 소년범 1명당 1시간가량 시간을 들여 재판한다. 이와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소년 재판은 '깜깜이 재판'이라고 불러도 억울할 게 없다. 천 판사는 "처음 소년 재판을 맡았을 당시에는 상황이 더 열악했다"면서 "소년 재판은 우리 경제 규모나 수준에 걸맞지 않은 후진성을 띠고 있다"고 회상했다.


◆"안 돼, 돌아가!" 법정 문 열어둔 호통 판사=천 판사가 유명세를 타게 된 계기는 한 방송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었다. 비행 청소년들을 법정에서 엄하게 꾸짖는 모습이 전파를 타면서 '호통 판사'로 불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두 손을 모은 채 "한 번만 용서해 달라"며 울먹거리는 모습에도 "안 돼, 바꿀 생각 없어. 돌아가"라고 냉정하고 엄숙하게 말하는 천 판사의 영상은 아직도 회자되며 유튜브에서 676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재판 공개 여부는 판사가 결정하지만 소년 재판은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 때문에 소년 재판을 두고,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배려한다는 논란이 있다. 천 판사는 자신의 재판 장면을 언론을 통해 공개했다. 이유는 단 하나, 열악한 소년 재판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는 "소년 재판의 현실을 공론화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면서 "언론에서 취재를 하고 입소문까지 나면서 조금 나아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천 판사가 개선을 요구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현행법상 만 10세 이상부터 14세 미만 형사미성년자는 소년법 제4조에 따라 형사처분 대상이 되지 않고 보호처분을 받게 된다. 가장 강한 처벌인 '10호 처분'은 소년원 수감 2년에 해당하는데, 이마저도 만 12세 이상부터 14세까지만 적용 가능하다. 그 다음으로 강한 처벌인 '9호 처분'은 소년원 수감 6개월에 해당한다. 9호와 10호 처분에는 1년 6개월이란 큰 차이가 있지만 그 사이에 해당하는 처분은 전무하다. 천 판사는 "단순히 형법만 보더라도 징역 10년 이하에 처한다고 하면, 판사가 징역 1개월부터 10년까지 선택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소년범은 처분 규정이 정해져 있어 선택할 수 없으니, 범죄의 중한 정도가 달라도 같은 처벌을 받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처벌 강화보다 구조 개선이 우선"=천 판사는 무조건적인 처벌 강화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처벌 강화가 범죄 예방 효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실제로 엄벌주의를 택해 소년범죄율을 떨어뜨린 국가는 단 한 곳도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어 "범죄라는 것은 결국 사회구조적 문제인데, 그 사회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이상 범죄율은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천 판사는 그러면서 "아이들이 비행을 저질렀다는 결과에 대해 혐오만 가질 게 아니라 아이들이 얼마나 열악하고 안타까운 환경에서 자라왔는지를 먼저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2시간 내내 천 판사는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소년 재판에 오는 아이들 대부분이 저소득층이고 결손가정 아이들도 많아요. 제대로 된 보호나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사정이 비슷한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니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것이죠." 천 판사는 이어갔다. "변호사 선임도 어렵지만, 그런다 해도 '소년 재판은 돈이 안 된다'라는 인식이 팽배해 제대로 된 변호조차 받지 못하고 있어요.아이들이 범죄에 발을 들이지 않도록 좋은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교정시설 열악…"소년법 폐지는 모두에게 악영향 미칠 것"=천 판사는 열악한 소년범 교정 시설 개선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천 판사는 "전국 모든 소년원은 현재 150~180%에 이르는 과밀 수용 상황"이라면서 "교정 인원의 70% 정도가 교화에 가장 적합한 환경임을 고려하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심지어 강력범죄 소년범을 수용할 수 있는 소년교도소는 경북 김천에 단 한 곳밖에 없다.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소년법 폐지에 대해 천 판사는 근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천 판사는 "국민들이 소년법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배경과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한다"면서도 "그러나 소년법을 함부로 폐지했다가는 비행 청소년뿐 아니라 다른 선량한 아이들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년 범죄에서 강력범죄는 5% 수준, 강력범죄 중 잔혹하고 엽기적인 사건은 1%에 불과하다"며 "처벌 상한을 높이거나 처분 기간을 늘리면 될 일이지, 소년법을 폐지해 나머지 95% 소년 범죄도 형법을 적용하게 되면 소년범 모두 전과자가 돼 버린다"고 우려했다.


청소년에게 제한적인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우리나라 현실도 천 판사가 소년법 폐지를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는 "청소년에게 무거운 책임을 부과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자유와 권리도 부여해야 한다"며 "투표권을 비롯해 법률 제정ㆍ폐지 참여권 등 정치ㆍ법률적 권리를 보장해주는 게 먼저"라고 했다.


'호통 판사' 천종호 "3분에 1명 선고, 컵라면 재판은 이제 그만"

▲소년범과 함께 한 '호통 판사'의 10년 = 천종호 판사의 현재 직책은 부산지방법원 형사부 부장판사다. 지난해 초 보직 순환 원칙에 따라 정든 소년부를 떠났다. 10년 만에 형사재판을 맡아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그의 시선은 여전히 소년들을 향해 있다. 부산 여중생 폭력사건을 비롯해 굵직굵직한 사건의 재판을 맡으면서 천 판사는 소년들의 대부(代父) 역할을 자처해 왔다. 그럼에도 천 판사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많다.


국내 소년범 수는 매년 7만여명. 무거운 죄를 저질러 교도소나 소년원으로 가는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아이들은 보호처분 등 가벼운 처벌을 받고 사회로 돌아간다. 그러나 다시 범죄 유혹에 노출되고, 재차 법정에 서는 경우가 잦다. 그들의 주변 환경도 교화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이 같은 상황을 숱하게 봐 온 천 판사는 자신이 직접 나서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법원에서 교육비 명목으로 나오는 지원금과 자신이 출간한 책의 인세 6000여만원, 그리고 후원금으로 마련한 돈을 합쳐 사법형 그룹홈을 설립했다. 결손가정과 저소득층 비행청소년들이 열악한 환경 때문에 다시 비행을 저지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주변 지인들이 출연해 만든 사단법인 '만사소년'도 천 판사와 발걸음을 함께 하고 있다. 만사소년 역시 천 판사가 책 인세와 후원금을 모아 위기 청소년들의 재범 방지와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 대표적인 활동은 매주 목요일 오후 6시에 부산 스포원축구장에서 진행되는 '만사소년축구단'이다. 극기여행, 문화체험 활동, 자립지원 사업 등도 함께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바리스타교육장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무료 바리스타교육을 실시했고, 교육을 마친 아이들에게는 자격증을 발급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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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2013), '이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2015), '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2018) 등 소년범이 된 아이들을 다룬 책도 꾸준히 써온 천 판사는 여전히 소년 법정으로 돌아가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 천 판사는 "소년 재판은 마음으로 하는 재판"이라면서 "언제든 다시 돌아갈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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