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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웅의 행인일기 46] 로마의 돌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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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웅의 행인일기 46] 로마의 돌길 위에서 윤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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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발걸음은 어느덧 로마에 닿습니다. 사통팔달의 로마. 여기는 세계 교통의 중심지였던 곳.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은 로마가 대제국을 이루던 시절, 유럽 전역으로 뻗어나가던 교통 인프라를 가리킵니다. 말과 마차, 대규모 병력 이동이 가능한 조건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도로를 실용적으로 건설해야 했지요. 흙바닥을 2m쯤 파고 모래를 넣어 다진 후에 30㎝ 가량의 자갈을 깔고 석회를 붓습니다. 그 위에 주먹돌로 층을 만들고, 맨 위엔 사각뿔 모양의 긴 돌을 박아 넣어 포장하는 방식입니다. 겉에서 보면 편평하고 납작하게 생겼어도 파보면 이빨처럼 뿌리가 깊게 박혀 있지요. 마차가 질주해도 어지간해서는 파손되지 않습니다.


군인이자 연설의 대가였던 카이사르가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외치며 지나간 길.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진 안토니우스가 조국을 버리고 죽음을 향해 걸어간 길. 압도적인 남성문화가 지배하던 시절, 전쟁과 권력과 노예가 만들어낸 강고한 인프라. 하지만 그때도 민들레 홀씨가 날고 구름 그림자가 슬쩍슬쩍 흘러간 길. 기록만 하지 않을 뿐 역사를 가장 많이 기억하는 천년의 돌길.


로마 전역에 이런 돌길이 많습니다. 로마의 상징은 콜로세움일 테지만, 저는 시내 곳곳에 깔려 있는 돌길이 ‘진정한 로마스러움’이라고 봅니다. 네모반듯하고 두툼한 작은 돌들이 정방형의 질서정연한 문양으로 배열되기도 하고 부채꼴을 이루기도 하면서 우툴두툴 머리를 내밀고 있습니다. 검고 오래된, 표면이 반들거리는 시간의 화석입니다. 제 운동화는 돌길 위를 지나간 수천 년의 발자국과 말발굽과 수레바퀴의 흔적을 더듬거립니다.


대전 계족산 흙길 위를 맨발로 걸을 때와 다른 기분입니다. 흙길 맨발 보행은 땅과 접촉하는 느낌이 부드럽고 여성적입니다. 발바닥 스킨십을 통해 지구와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지요. 흙길 위를 걸어가는 맨발의 느낌은 비 오고 난 뒤 촉기가 조금 남아 있을 때가 최고입니다. 흙길을 맨발로 걸어보세요. 꾸들꾸들한 듯, 촉촉한 듯, 몸무게로 눌러 발바닥에 전해오는 땅의 살가움. 지구 어머니와 하나 되는 느낌. 맨발의 쾌미(快味)는 이런 경지가 최상승(最上乘)입니다.


로마의 돌길 역시 체험의 무대입니다. 알흙 쫀득쫀득 살아 있는 흙길이 장소성을 체험하게 한다면, 로마 돌길은 오래 묵은 시간의 무게를 느끼게 하지요. 흙길이 자연을 걷는 무위(無爲)의 체험이라면, 돌길은 대규모 노동력을 투입해 만든 인위(人爲)의 체험입니다. 사람과 자연을 정감적으로 연결하는 흙길. 이에 반해 로마 돌길은 물류 신경망이지요. 개인의 느낌보다 물량과 속도가 중요한 제국의 네트워크. 이 비정한 인프라 위를 맨발로 걸을 순 없습니다. 발과 돌 사이에 중간지대가 있어야 하지요. 육체와 대지의 중간지대. 신발은 그런 숙명의 주인공입니다.


[윤재웅의 행인일기 46] 로마의 돌길 위에서

돌길과 신발. 저는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낮은 것을 통해 로마의 문명을 생각합니다. 로마의 돌길은 내구성 강한 발명품입니다. 쉬이 스러지지 않지요. 유럽의 많은 골목길들이 이런 방식을 모방합니다. 아시아 전역에 젓가락 문화가 퍼져 있는 것처럼, 유럽의 돌길은 하나의 문화입니다. 자동차 타고 빨리 달리는 덴 불편하지만, 보행자들에겐 고색창연한 시간의 박물관 느낌을 줍니다.


돌길을 걷기 위해선 질기고 부드러운 가죽신을 신어야 합니다. 이른 시기의 유럽문화권에선 샌들 형태의 가죽신이 생겨났는데 그건 가죽으로 발을 감싸고 생가죽 끈으로 졸라매는 형태였습니다. 로마 시대엔 신분과 성별에 따라 다양한 신발이 제조되었습니다. 돌길 위를 걸어야 하는 맞춤형 발명품이지요. 가죽이 많이 필요했고, 소와 염소들이 그것들을 제공했습니다.


우유와 버터와 신발은 풀 먹고 자란 소들이 인류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우유나 버터와는 달리 신발은 ‘슬픈 선물’이지요. 그들의 가죽을 벗겨야 하니까요. 냉정하게 보면 가축은 정복과 약탈의 원초적 형태가 아니겠는지요. 소나 염소는 사람에게 붙들려 수천수만 년 간 노예생활을 하는 생명입니다. 열심히 일해주고는 고기와 젖과 가죽을 남기고 가는 생명체. 인간과 함께하는 삶이 그들에게 과연 행복할까요?


로마 돌길은 제국의 찬란한 아이콘이지만 정복과 약탈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빠른 속도로 달려 적진을 점령하는 로마의 전차. 돌길 뻗어나가는 곳 모두가 로마 땅입니다. 건축, 조각, 음악, 예술, 각종 생활상들이 전파되면서 문명이 흥성하기 시작하지요. 신발이 더 많이 필요하고, 슬픈 선물을 위해 더 많은 생명을 길러야 합니다.


전쟁과 권력과 노예의 제국 로마. 지구 어머니로부터 멀어지는 수컷들의 고독한 전투. 저는 오늘 로마의 검은 돌길 위에 서서 지상의 해방된 경계를 그려 봅니다. 맨발의 촉감 그리운 알땅바닥. 어머니의 살가운 나라이며 인류의 고향 중의 고향. 그대여, 신발을 벗고 양말도 벗어보세요. 여기가 모든 행인의 고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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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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