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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웅의 행인일기 43]아랍문화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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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웅의 행인일기 43]아랍문화원에서 윤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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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1942)의 첫 문장입니다. 카뮈는 인간 실존의 부조리를 철저하게 고발하는 작가로 명성이 높습니다. 1957년에 노벨문학상을 받기도 했지요. <이방인>은 그의 대표작입니다.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내고 혼자 사는 월급쟁이 사내.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도 않을뿐더러 어머니의 나이를 묻는 장의사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도 못합니다. 여기가 패륜의 낙인이 찍히는 기점이지요.


뫼르소는 모친 장례 다음날 회사의 옛 동료인 마리를 만나 사랑을 나눕니다. 며칠 뒤, 같은 아파트에 사는 레이몽이라는 사내의 아랍인 정부(情婦) 문제로 불의의 살인을 저지르는 뫼르소. 그는 레이몽에게 위협을 가하는 아랍인 남자를 총으로 쏴서 죽이고는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살인의 동기는 ‘눈부신 빛’ 때문. 변호사, 검사, 예심 판사는 살인의 동기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수집한 뫼르소의 패륜적 기행들이 오히려 사형 양형의 이유가 됩니다.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사형 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나는 단지 이 책의 주인공이 그 손쉬운 일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을 선고받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카뮈는 뫼르소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통해 삶의 부조리한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눈부신 빛’이 어찌 살인 동기가 되겠습니까? 패륜죄를 덧씌워야 법 집행의 근거가 생기는 겁니다. 살인 사건 이전에는 누구도 뫼르소에게 패륜의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동기로 살인사건이 일어나자 그 원인을 밝히는 데 패륜이 동원되는 것이지요. 이 자체가 부조리하다는 게 카뮈의 입장입니다.


문학청년 시절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눈부신 빛’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걸음을 옮겨도 끈질기게 따라오는 더위. ‘머리가 아프고 이마의 모든 핏대가 피부 밑에서 지끈거리는’ 폭염의 절정, 바로 그 순간. 마치 방사능에 피폭된 듯 태양의 신 ‘라(Ra)’의 무지막지한 강림 앞에 무기력해지는 뫼르소를 상상하면서, 유럽과 아랍 사이의 오랜 적대감이 무의식적으로 솟아오른 거라고 짐작합니다. 아랍의 폭염에 대한 유럽의 거부감이 상징적으로 드러난 사건. 뫼르소의 살인 동기를 이렇게 읽을 수도 있지 않겠는지요. 이방인에 대한 배타적 무의식이 내재화 된 뫼르소는 유럽사회 내에서도 낯선 존재입니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불행하지요.


[윤재웅의 행인일기 43]아랍문화원에서

뫼르소에게 살인 충동을 일으켰던 눈부신 빛. 그 빛을 조절함으로써 유럽과 아랍 사이의 오랜 갈등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이곳 파리에 있습니다. 아랍문화원(IMA. Institut du Monde Arabe)을 주목해야 할 이유이죠. 이 건축물은 프랑스가 유린한 북아프리카와 터키 주변의 아랍국 사람들이 프랑스에 유입되어 일으킨 사회문제가 발단이 됩니다. 프랑스는 자국 내 아랍인들을 달래는 차원에서 아랍문화권과 전략적 관계를 맺고 그 해결 방안으로 파리 시내에 아랍문화원을 짓기로 결정합니다. 공모에서 당선된 이는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1945~). 그는 이 작품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며, ‘빛의 건축가’로 화려하게 탄생합니다.


‘아랍문화에 바치는 현대 서구의 건축물’. IMA는 은회색 직육면체로 된 두툼한 책 모양인데, 특이하게도 정면부 전체가 ‘기계의 눈’으로 덮여 있습니다. 빛의 밝기에 따라 개폐되는 광전자 셀을 이용하는 것이지요. 바깥이 지나치게 눈부시면 조리개가 작동하여 빛이 적게 들어오도록 오므라듭니다. 날이 흐리면 많이 열린다는군요. 건축물의 피부나 다름없는 조리개 디자인은 알람브라 궁전의 아라베스크 문양 비슷합니다. 디자인 하나로 아랍전통을 단박에 표현하는 장인정신이 놀랍기도 하지만, 저는 ‘조절’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해볼 기회가 생겨서 좋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합리적이지만 세계는 몰합리적입니다. 그 사이의 불일치가 ‘부조리’이고, 이것이 바로 인간의 조건이라고 카뮈는 말하지요. 조절되지 않는 세계의 몰합리성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꿋꿋하게 살아가는 겁니다. 까뮈는 그것을 ‘반항’이라 부르고, 부조리를 극복하는 방안이라고 주장합니다. 삶은 무엇인가요? 불일치의 꿋꿋한 조절. 다윈처럼 말하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겁니다.


빛과 그늘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광대 정치꾼들에게 속지 않기. 극단에 머물러 격분하지 않고 꿋꿋하게 조절하기. 파리의 아랍문화원 건물 내부를 거닐어보면 빛의 조리개 안쪽 세계를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아라베스크를 통과하는 햇빛. 은은하게 누그러진 아름다움입니다. 삶은 결국 대립의 조절을 통해 조화에 이르는 길이라는 걸 새로 배웁니다. 정치는 ‘불만을 가진 타협’이지만, 문학과 철학과 예술은 ‘꿋꿋한 조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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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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