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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웅의 행인일기 36]퐁피두센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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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웅의 행인일기 36]퐁피두센터에서 윤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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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거대한 박물관. 거리는 말끔하고 건물들은 질서정연하게 배열되어 있습니다. 고층빌딩도 좀처럼 10층을 넘지 않지요. 실내는 디자인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지만, 중세풍의 외관은 시 당국에 의해 관리·통제됩니다. 건물 꼭대기마다 솟아 있는 굴뚝들조차 ‘독특한 비슷함’으로 자기를 뽐내지요. 한두 개를 보면 특별하지만 전체가 다 그러면 특별함이 사라지는 이상한 동질성. 독특한 겉모습 이면에 있는 집단 통제가 이 도시의 본성입니다. 그래서 저는 파리의 느낌을 ‘감독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의상을 곱게 차려입은 여배우 같은 도시’로 정리합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파리의 모습에 자부심을 가지지만 어떤 이들은 ‘파리스러움’을 벗어나는 변화를 추구합니다. 매너리즘에 빠지는 걸 경계하자는 겁니다. 지루하고 변함없는, 우아한 고전풍의 이미지를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는 처음엔 극소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극소수라도 담대한 비전과 놀라운 창의와 소통의 화술이 결합하면 절대다수도 감복하게 마련입니다. 비전과 창의와 소통! 파리의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 동원된 이 세 가지의 미덕을 파리 시민에게 나누어준 주인공은 프랑스의 어떤 대통령입니다.


1969년, 샤를 드골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그는 뉴욕이나 런던이 멋진 국제도시로 성장하는 것을 바라만 볼 수 없었습니다. 파리에 현대화 된 도시의 정신을 새롭게 불어넣고 싶어 했지요. 특별한 건축의 건립을 통해서 말입니다. 국제 공모를 해서 이탈리아와 영국 작가의 설계가 당선작으로 뽑혔는데, 대통령은 이 건축물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그만 희귀질환으로 작고합니다. 후에 그를 기념하여 이 특별한 건물에 그의 이름을 붙이게 되지요. 파리 시내에서 가장 파리스럽지 않은 건물. 온갖 비난과 모함에 시달리던 건물. 바로 퐁피두센터입니다.


이 건물은 안과 밖이 뒤집어진 특이한 설계를 고집하지요. 철골 구조, 전기 배선, 환기구, 계단, 에스컬레이터, 상하수도 같은 내장재가 건물 안에 감추어져 있는 게 아니라 외관에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밖에서 바라보면 마치 공장이나 창고처럼 생겼습니다. 하지만 상식을 뒤집는 ‘거꾸로 발상’은 실내 공간을 최대한 넓게 만들어 실용성 면에서는 높은 평점을 받습니다. 전시장으로 안성맞춤인 셈이지요. 게다가 건물 외벽이 모두 유리입니다. 안이 다 보이는 구조를 고집하는 겁니다. 낮에는 자연채광을 할 수 있어 에너지 절감에 좋고 내부가 투명하므로 안전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공공기관으로서는 최적화 된 환경이지요. 파리의 관습화 된 모습, 잘 차려입은 배우의 이미지를 충격적으로 파괴합니다.


[윤재웅의 행인일기 36]퐁피두센터에서

디자인만 독특한 게 아닙니다. 바탕에 깔려 있는 철학도 삶의 질 향상을 고민하는 사려를 보여줍니다. 이 지역은 원래 빈민가와 술집이 밀집해 있던 유흥가였습니다. 농수산물 시장이 있어서 쓰레기로 인한 악취도 심했다고 합니다. 대통령은 상인들을 설득하여 농수산물 시장을 파리의 남쪽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복합문화공간을 짓고자 합니다.


이런 모습이 참된 리더십 아닐까요? 수십 년 앞 미래를 내다보는 결단이 도시를 바꾸고 사람을 변화시키며 미래를 발명합니다. 미래는 예상하고 예측만 해서는 안 됩니다. 힘을 모아 새롭게 만들어나가야 하지요. 그래서 ‘미래는 발명해야 한다.’는 명제가 가능합니다. 쓰레기더미와 유흥 술집 공간은 이제 음악과 영화와 책이 있는 곳으로 탈바꿈합니다. 상전벽해(桑田碧海). 파리의 치부가 파리의 명소로 재탄생하는 순간은 1977년 1월 31일이었습니다. 일일 평균 방문객 5천 명을 예상했는데 그 다섯 배인 2만 5천 명이 입장을 합니다. 세월이 갈수록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서 마침내 파리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게 되지요.


1층엔 카페테라스, 영화관, 서점이 있습니다. 0층 로비에선 ‘저자와의 대화’가 한창이네요. 강의와 질문과 토론이 오래도록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틀리에 컨퍼런스’라는, 현대예술과 관련된 책을 읽고 토론하는 커뮤니티 프로그램입니다. 또 다른 옆에는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생활과 놀이가 예술로 이어지는 현장입니다.


2층부터 4층까지는 도서관. 규모가 축구장 크기만 합니다. 자세히 보니 기둥이 없습니다. 실제로 축구를 해도 될 듯싶군요. 사서만 2백 명이 넘습니다. 그중에는 일반 자원봉사자도 있고 노숙자나 난민들을 위한 특화된 봉사자도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가 잘 되어 있는 것이지요. 5층 국립현대미술관에선 ‘샤갈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상전벽해의 복합문화공간. 초기의 비난과 멸시를 극복하고 이제 파리 시민의 자긍심이 된 퐁피두센터. 도시를 바꾸고 사람을 바꾸고 미래를 바꾸는 건축의 힘을 새삼스럽게 느낍니다. 아파트로 빽빽한 우리의 수도 서울. 빈 터만 나오면 다시 새 아파트 짓기에 바쁜 우리의 서울은 어쩌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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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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