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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위안과 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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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위안과 정명 정은귀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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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에 전시를 마감하는 '기록 기억: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다 듣지 못한 말들' 전시회에 다녀왔다. 1932년부터 1945년까지 태평양 전쟁 기간 일본은 아시아 태평양 모든 지역에 일본군 위안소를 설치하여 식민지의 여성들을 위안부로 끌고 갔다. 명예를 최고로 여기는 아시아적 가치에서 제국의 권력에 의해 강제로 몸이 더럽혀진 여성들은 살아 있으되 산목숨이 아니었고 입은 있으되 말을 할 수 없었다.


거의 반세기가 지나서야 비로소 큰 용기로 세상에 대고 참상을 고할 수 있었던 여성들. 위안부 여성들이 증언을 하는 일은 자신의 전 생애를 거는 큰 희생과 용기가 필요한 일. 때로 가족에게 버림받는 아픔을 무릅쓰고 이들 피해여성들이 아픈 기억을 증언함으로써 전시 폭력의 가려진 역사가 드러나게 되었다.


전쟁 성노예 희생자들인 이들 여성들이 단순한 희생자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들의 몸과 마음에 오롯이 새겨진 상처와 참상을 증언하고 이름도 없이 죽어간 동료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행위. 이는 이들을 단순한 전쟁 피해자가 아니라 인권의 수호자로 거듭 태어나게 했다. 동료의 죽음을 증언하고 자신의 상처를 꺼내 보인 그 용기는 인간의 목숨이 얼마나 존엄한 것인지, 더 나은 삶을 향한 열망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깨닫게 한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해국과 가해자들의 진정어린 사과 없이 '종군위안부'는 국가 간 외교전의 타협과 협상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 역사의 살아있는 상처이자 아픔인 종군위안부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은 그러므로 지금도 우리 일상 속에서 지금도 별 문제의식 없이 진행 중인 여성의 몸에 대한 폭력과 학대를 자각하는 첫 걸음이다. 전시회에서 묵묵한 표정으로 그 아픈 기록들을 살피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따옴표로 표기된 '위안부'라는 이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국제적으로 '전시 성노예' 혹은 '전쟁 성폭력 피해자'로 불리는 종군위안부는 정명의 관점에서 틀린 이름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정치를 맡기면 무엇부터 하겠느냐는 질문에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正名)"고 하였는데, '위안부'는 여성의 몸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잘못된 이름이다.


정명의 관점에서 이걸 자각하는 일은 지금 시절 우리를 강타하는 여러 성폭력 사건들의 이름과 함께 정명이 우리 현실 인식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가령 아직도 미해결된 장자연 사건을 보자. 금력과 권력에 유린되어 죽어간 장자연이라는 피해자를 사건의 이름으로 칭함으로써 우리는 여성의 몸을 마음껏 유린한 폭력적인 권리, 합법화된 강간 문화에 대해 제대로 질문하지 않고 피해자를 손쉽게 대상화한다. 위안부가 남성에게 위안을 주는 여성의 몸이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잘못된 이름이듯, 장자연 사건 또한 모든 성관련 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몸을, 얼굴을 현미경으로 들이대는 그릇된 관심을 보여주는 사례다.


클럽 버닝썬 사태를 통해 가시화된 끔찍한 강간문화는 우리 사회가 20세기 초반 제국이 여성의 몸을 유린한 그 지점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권력과 힘으로 비틀려진 성적 욕망의 현주소를 고발하고 이를 바로잡는 일은 피해자를 대상화하는 그릇된 명명을 바로잡는 일에서 출발한다. 피해자 장자연 대신 권력 뒤에 숨은 가해자들을 밝히고 벌하는 일의 출발점에서도 '정명'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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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귀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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