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캐년서 추락사고 당한 대학생 구호 요청 청원에 싸늘한 여론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자격 박탈도 ‘마녀사냥’
방송사 연예대상 수상자에 대한 불만도 국민청원 게시판에

[아시아경제 유병돈 기자] “25살 대한민국의 청년을 조국으로 데려올 수 있게 도와주세요!”
지난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의 제목이다. 미국 그랜드캐년에서 추락 사고를 당한 한국인 대학생 박준혁(25)씨의 귀국을 도와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이 올라와 국민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청원인은 “부산 동아대에 재학 중인 25살 박모씨가 지난해 12월 30일, 그랜드캐년에서 발을 헛디디며 추락해 머리 등을 크게 다쳐 현재 혼수상태”라며 “한국으로 데려 오고 싶지만 관광회사와 법적인 문제뿐 아니라 병원비만 10억원, 환자 이송비만 2억원이 소요돼 불가능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어 “단 1명의 자국 국민일지라도 이를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고 한다면 이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인 박씨가 고국으로 돌아 올 수 있게 도와주시길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해당 청원은 25일 오전 3시 현재 2만명이 넘는 인원의 추천을 받은 상태다.
그러나 이를 두고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안타깝다’는 찬성 의견과 ‘개인의 잘못으로 인한 사고에 세금을 쓰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반대 의견이 갈리고 있다. 일반적인 국민청원 글에 ‘동의합니다’라는 댓글이 주를 이루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해당 글에는 ‘반대합니다’라는 댓글이 많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처럼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좌충우돌하는 여론에 ‘몸살’을 앓고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해 일방적인 주장이 등장하면 쏠림 현상이 벌어지고 나중에 반대 측의 주장이 나오면 혼란을 겪는 일이 반복되면서다.
지난해 2월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벌어진 ‘마녀사냥’이 대표적인 예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종목에서 왕따 논란의 중심에선 국가대표 김보름·박지우 선수에 대한 자격 박탈을 청원하는 글의 추천 수가 60만을 넘었던 것.

심지어 지난달 한 방송사의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가수 겸 배우 이승기씨가 대상을 수상하자 이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제기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빚어졌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예능인들에 비해 딱히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이승기씨의 수상에 부정적인 여론이 증폭된 나머지 발생한 촌극이었다.
상황이 이렇지만 청와대는 여전히 국민청원 게시판의 순기능을 신뢰하는 모양새다.
국민청원 게시판 담당자인 정혜승 비서관은 지난해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 ‘11시 50분, 청와대입니다’에 출연해 “장난스럽고 비현실적인 제안도 이 공간에서는 가능하고, 국민들이 분노를 털어놓을 곳도 필요하다고 본다”며 “국민청원 게시판이 놀이터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국민청원 게시판의 존치 여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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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진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국민청원 게시판은 이전 정부에서는 볼 수 없었던 국민과의 소통이 이뤄지는 창구로 그 의미가 크다”면서 “일부 몰지각한 청원 때문에 그 창구를 닫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윤 교수는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청원들을 자정하는 기능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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