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찍힌 '플라스틱 페트병'이 퇴출될 수 있을까요? 병째 먹는 물주머니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세계적으로 연간 2000억개의 페트병이 버려지는데 이 중 20%만이 재활용되고, 나머지 80%는 버려지거나 매립·소각된다고 합니다. 버려지는 페트병은 말할 것도 없고, 매립·소각하는 경우에도 완전히 처리가 되지 않아 토양오염은 불가피한 실정입니다.
이런 페트병을 퇴출시키고, 친환경용품으로 기대되고 있는 제품이 해초로 만든 투명하고 동그랗게 생긴 물주머니 '오호(Ooho)'입니다. 오호는 영국 왕립예술학교에 재학중이던 학생들이 만들었는데 혁신적 아이디어와 디자인으로 2014년 렉서스 디자인상과 세계 기술상 환경부문, 2015년 바다상, 2016년 영국의 지구 에너지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스키핑락스랩(Skipping Rocks Lab)'이란 스타트업을 세우고,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오호의 상용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런던에서 이미 시음과 시판 허가를 받았습니다.
오호의 제작원리는 '분자요리'에 있습니다. 분자요리의 '구체화(球體化, Spherification) 요리법'을 이용해 액체를 구 형태의 모양으로 만들고, 그 속에 물이 갖히는 형태입니다. 주재료는 두 가지입니다. 식품의 접착성과 점도를 증가시키는 식품첨가물로 해초에서 추출하는 '알긴산나트륨'과 역시 식품첨가제로 활용되는 '젖산칼슘'입니다.
물에 잘녹는 알긴산나트륨과 젖산칼슘이 화학반응을 일으키면 알긴산칼슘과 젖산나트륨으로 서로 섞이면서 그물처럼 얼기설기 얽어져 촘촘한 막이 생깁니다. 각 성분을 용액으로 구성하면 서로 얽히면서 모양이 구처럼 변해 물은 구 안에 갇히는 것이지요.
지난 9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해로우마라톤에서는 페트병에 담긴 물 대신 오호가 제공됐습니다. 해초를 주성분으로 만든 오호는 껍질까지 먹을 수 있어 패트병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껍질을 길에 버려도 100% 생분해성 소재라서 6주 이내에 분해됩니다. 물은 기본이고, 술, 탄산음료, 화장품도 담을 수 있으며, 향과 색깔도 첨가할 수 있어 활용범위가 무궁무진합니다. 게다가 재료가 플라스틱보다 가볍고, 재료비도 저렴합니다.
영국의 스포츠음료 제조사인 루코제이드(Lucozade)도 최근 스키핑락스랩과 파트너쉽을 체결하고, 오호를 기반으로 한 튜브(tube)용기 음료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루코제이드는 지난달 열린 리치몬드 마라톤 등의 대회에서 오호에 담긴 스포츠음료를 마라토너는 물론 관중들에게 제공하며, 대중들의 반응을 살폈는데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루코제이드의 마케팅책임자 루시 그로거트는 "오호는 스포츠음료인 루코제이드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완전히 새롭고 흥미로운 방법이다. 우리는 장기적으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흥미진진한 대중 참여 스포츠행사 등에 이 제품을 제공할 예정"이라면서 "스키핑락스랩과의 파트너쉽은 지속가능한 일들을 위해 긍정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오호가 세상에 나온지 벌써 몇년이 됐는데도 이제 상용화의 걸음마를 떼고 있는 이유는 오호의 단점이 아직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호가 페트병의 대안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바로 '유통'에 대한 문제입니다. 오호는 외부막이 얇아 페트병처럼 운반하기가 어렵습니다. 스피킹락스랩은 외부막이 쉽게 손상되지 않도록 서너개의 작은 오호를 큰 오호로 감싸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겹의 막을 여러 겹으로 덧씌우면 더 튼튼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청결도 문제가 됐습니다. 오호를 손으로 주물럭거리거나, 유통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만지면 오호 표면이 더러워지는데 껍질을 톡터트려 먹어야 하는 오호의 위생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한번 터트리면 양조절이 어렵다는 점도 해결과제입니다. 페트병처럼 조금만 마시고 보관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한 번에 다 마셔야 합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스키핑락스랩은 오호의 모양을 구 모양에서 작은 쿠션 모양으로 만들기도 하고, 여러 다른 용량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배달 전문 서비스 앱인 'Just Eat'을 통해 유통 여부에 대해서도 시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젤리처럼 퍼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 시판도 하는데 하나에 250엔이나 한다고 합니다.
일본처럼 물을 사치품으로 팔아서는 대중화가 힘들겠지만, 페트병을 대신할 수 있는 오호가 되기 위해 오호는 오늘도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오호가 대중화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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