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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웅의 행인일기 12]뻐꾹새 소리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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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웅의 행인일기 12]뻐꾹새 소리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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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사리아(Sarria)의 막달레나 알베르게를 떠납니다. 천천히 걷더라도 콤포스텔라까지 일주일이면 갈 수 있습니다. 보통 이 구간은 포르토마린(Portomarin)까지 23㎞를 가는데, 컨디션이 좋아서 다음 구간의 절반 정도를 더 가게 되었습니다. 오리츠(Ortiz) 알베르게. 사설 숙소입니다. 예약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들어갑니다. 다행히 방이 있네요. 기대했던 곤사르(Gonzar)의 알베르게는 매트가 없답니다. 1㎞쯤 더 걸어 겨우 당도한 곳. 중년 부부가 친절하게 맞아줍니다.


욕실 시설이 재미나네요. 샤워기에 물 나오는 시간이 6분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알뜰한 거죠. 순례길의 알베르게 욕실은 대부분 비좁습니다. 한 사람이 겨우 설 정도의 공간만 허용합니다. 여기 샤워실은 물도 최소한만 쓰라는 모양입니다. 문 앞의 기계에 전용 코인을 넣어야 하는데 디지털 숫자가 완전히 0이 되고 나서 넣지 않으면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실수! 주인에게 이야기하니 웃으며 코인을 다시 줍니다. 코인을 넣은 후 3분 정도 있어야 물이 나온다는 추가 설명과 함께. 부랴부랴 샤워를 마칩니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스웨덴에서 온 덩치 큰 부부가 제게 도움을 청합니다. 부인이 먼저 다가와 기계에 코인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난감해합니다. 그녀는 약시. 코인에 파인 홈이 잘 보이지 않는 겁니다. 제가 가서 홈이 파인 방향대로 넣어줍니다. 문이 열리면서 그녀는 브라보를 외칩니다. 그녀가 씻고 나간 후 남편이 다시 옵니다. 물이 나오지 않는다며 당황해합니다. 제가 또 가봅니다. 욕실에 들어가 있으면 곧 물이 나오게 해주겠다고 말합니다. 잠시 뒤 안에서 환호소리가 납니다. 저는 그냥 3분이 지나기를 기다렸을 뿐. 한참 뒤 부인이 하는 말이 걸작입니다. '당신은 나도 도와주고 내 남편도 도와주었으니 우리 부부의 은인입니다.' 사소한 일에 감사하는 부부를 보면서 일상의 지혜를 또 배웁니다. '내 실수를 다른 사람이 반복하지 않도록만 해도 이웃은 금세 행복해진다네!'


다른 사람 기분 좋게 하는 일, 또 있습니다. 하루 종일 걸어서 곤사르까지 왔는데 숙소를 구하지 못해 근처 카페에 들어 잠시 쉴 때입니다. 카페 주인은 권태와 씨름 중입니다. 감자튀김, 계란 프라이, 콜라 주세요! 주문한 음식은 늙은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헤엄쳐 옵니다. 노천 좌석에는 우리 말고도 다른 팀이 더 앉아 있네요. 오후 4시를 넘어선 햇살이 뱃가죽 늘어진 개처럼 좌석 사이를 어슬렁거립니다.

[윤재웅의 행인일기 12]뻐꾹새 소리 속에서

뻐꾸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였지요. 하늘의 깊은 우물 속에서 들려오는 정 소리. 가슴 속 슬픔의 바위를 내리치는 물망치 소리 같은 연주입니다. 스페인 새야, 네가 나를 부르는구나! 갑자기 어릴 적 친구에게 배운 손뻐꾸기 연주 생각납니다. 두 손을 동그랗게 말아 쥐고 공처럼 부풀린 다음 입으로 가져갑니다. 가만히 추억의 숨소리 불어넣어 봅니다. 손은 단순소박한 관악기가 되지요. 연주에는 약간의 기교와 창의적 변주가 필요합니다. 왼손 네 번째, 다섯 번째 손가락을 오무렸다 폈다 해야 손에서 뻐꾸기가 날아갑니다. 진짜 뻐꾸기가 하늘 깊숙한 곳에서 울면 제 손뻐꾸기가 답가를 연주하는 거죠. 주거니 받거니 천지 공간이 제법 잘 울립니다.


나그네들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이들 역시 우리가 걸어온 길로 왔을 테지요. 소똥 향내 가득한 농가들. 소 발자국 고인 물에 비치는 푸른 하늘 흰 구름. 짚풀 삭는 냄새들. 30년 전 제 가슴에 꽂고 있던 하얀 꽃 칼라꽃. 칼라꽃 지천으로 핀 양지바른 골목길. 빛바래 땅으로 돌아가는 냄새들과 공중에 피어나는 목숨들이 어우러지는 곳. 자기도 일어나 걷고 싶은지, 자꾸만 따라오는 시냇물…. 여기는 대체 어느 깊숙한 제 영혼의 고향인가요.


나그네들은 '쿡쿠'라면서 좋아라 합니다. 환한 미소로, 한정 없는 평화를 즐길 줄 아는 이들입니다. '좋은 여행길!' 굳이 말할 필요 없습니다. 빨래 잘 마르는 날의 햇살 같은 웃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나그네들은 금세 친해집니다.


50년 가까이 된 추억이 있습니다. 윤우가 제게 손뻐꾸기를 가르쳐주었죠. 그때는 흉내 내는 게 재미있어 열심히 했는데 세월이 지난 지금은 스페인 새의 연주에 추임새 넣는 버전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스페인 곤사르의 뻐꾸기는 놀랐을까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는 하늘의 깊은 우물이 어쩌면 저승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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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가 울면 하늘 공중은 성심을 다해 제 몸을 떱니다. 그 성심 가슴에 전해져야 슬픔의 심연 오롯이 느낄 수 있지요. 윤우는 오래 만나지 못했습니다. 건강하고 씩씩했던 시골 소년. 6학년 겨울방학에 연탄가스 중독으로 먼저 갔습니다. 그때 윤우네 집 앞 연못이 꽝꽝 얼어 있었는데, 저는 한밤중에 연못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가슴 빠개지듯 얼음 쪼개지는 그 소리. 아직 잊지 못합니다. 뻐꾸기는 뻐꾹 뻐꾹 울지만 연못은 쩌엉 쩌엉 웁니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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