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지하자원의 보고, 카스피해
바다도 호수도 아닌 애매모호한 '특수지위' 새로 획득
결국 해군력 가장 강한 러시아의 승리란 분석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세계 최대 규모의 짠물 호수, 즉 함수호(鹹水湖)인 카스피해의 분할을 두고 20여년을 다퉈오던 인접국가들간의 논쟁이 일단락됐다. 구소련 이후 전개되던 분할 분쟁 속에서 호수로 불렸다가 바다로 불렸다가를 반복하던 카스피해는 호수도 바다도 아닌 애매모호한 특수지위를 새로 얻게 됐다. 세계 마지막으로 남은 천연자원의 보고이자 중동에서 유럽으로 이어지는 송유관의 주요 길목 중 하나라는 지정학적 이점으로 인해 분쟁의 불씨는 언제든 되살아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AFP 통신 등 외신들에 의하면 12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서부 악타우에서 열린 '카스피해 연안 5개국 정상회의' 결과 러시아, 이란,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등 5개국은 20여년간 끌어오던 카스피해 분쟁을 마무리짓고, 처음으로 역사적 합의를 도출하는데 성공했다. 세부적인 합의사항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5개국은 일단 카스피해를 기본적으로 '바다'로 규정하고, 세부조항에서 특수한 법적 지위를 부여하기로 합의했다. 이에따라 카스피해는 바다도 호수도 아닌 애매모호한 지위를 새로 얻게 됐다.
그동안 카스피해를 호수로 규정지을지 바다로 규정지을지를 놓고 연안 5개국간 논쟁이 계속 이어져왔다. 호수의 경우에는 육상 영토로 취급받아 각 국간 개별, 혹은 단체 협상을 통해 분할되고, 당사국이 아닌 타국이나 국제기구가 간섭하기 어렵다. 이와 달리 바다의 경우에는 국제 해양법에 따라 영해와 공해, 배타적 경제수역, 공동수역 등이 나뉘어지며 분쟁시 국제기구의 중재 등을 요청하기 더 쉽다.

카스피해는 원래 구소련 시절, 소련과 이란이 분할 협정을 맺어 양분됐다가 구소련 붕괴 이후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등 3개국이 소련에 분할돼 새로운 인접국가가 되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소련과 이란 분할협정 당시에는 카스피해를 호수로 규정, 영토분할 형식으로 양분해버렸지만, 새로운 인접국가들은 카스피해의 지위를 바다로 규정해야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등 3개국이 카스피해를 바다로 규정하자고 주장한 이유는 이들 국가 연안에 막대한 석유자원이 잠들어있는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바다로 규정할 경우, 인접 해안지역은 영해로 선포할 수 있고,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에서 독점적 권리를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인접 지역에 자원이 많은 국가들의 경우에는 바다로 규정해 국제 해양법에 따라 분할 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이에 비해 이란은 카스피해가 바다로 규정될 경우, 구소련시절 분할 때보다 훨씬 못한 지분을 갖게 되기 때문에 줄기차게 카스피해를 호수라 주장해왔다. 러시아는 이 양자간의 중재 및 협상 주도자로서 나섰으며, 카스피해의 애매모호한 특수지위를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에따라 카스피해는 일단 표면상은 바다로 규정, 해안선으로부터 15해리까지를 영해로, 다음 10해리까지 배타적 조업수역으로 설정하고, 대부분 수역은 공동이용수역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그리고 세부조항에서는 특수한 법적지위에 따라 자원을 공동관리, 분할하기로 합의했다.

카스피해 분할에 인접국가들이 이렇게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 주요 원인은 이 지역에 잠든 막대한 양의 천연자원 때문이다. 카스피해 일대는 그동안 구소련 붕괴 후 정정불안이 계속되면서 자원개발이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못해 지구상 마지막으로 남은 천연자원의 보고로 여겨지고 있다. 매장된 석유 추정치만 280억배럴로 세계 3위 수준, 미국 전체 석유 매장량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지역과 유럽을 직접 연결하려는 송유관, 가스관 건설은 계속 추진되고 있지만 유럽으로 향하는 천연가스관을 쥐고 있는 러시아의 반대에 번번이 부딪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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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해는 유럽과 중동을 잇는 주요 통로 중 하나인 캅카스(Kavkaz)와 인접한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캅카스 지역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놓인 회랑지역으로 중동일대의 송유관이 유럽으로 뻗어나가는 주요 길목에 위치해있다. 러시아 입장에서 이 지역의 통제는 자국의 유럽 내 독점적 가스 송출사업을 유지하는 것과 직결된다. 군사적으로도 러시아와 이란, 터키, 이라크 등 중동지역의 사이에 놓여있어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러시아의 남하정책과 맞물린 지역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합의를 두고 러시아의 외교적 승리라는 분석이 줄을 잇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보도에 의하면, 이번 5개국 협약에서 당사국이 아닌 타국 군대의 카스피해 주둔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된만큼, 사실상 이 지역의 최고 군사강국인 러시아의 입김이 더욱 강하게 작용할 것으로 분석됐다. 카스피해 일대에서 가장 강력한 해군력을 가진 나라가 러시아인데다, 러시아 해군 함대가 시리아 알 아사드 정권 지원을 위해 카스피해 주둔 함대에서 순항미사일을 발사하기도 하는 등 무력시위가 실제로 일어나기도 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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