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및 설치 불만신고 매년 6000건
설치비 등 제거하고 최저가로 '낚시'
배송·설치 후 추가 요금 과도하게 부가 사례 늘어

[아시아경제 박미주 기자]# 예비신부 A씨는 에어컨을 사기 위해 가격비교 쇼핑몰에 접속했다. 최저가 순으로 정렬된 화면을 보며 최상단의 저렴한 판매처에서 제품을 샀다. 며칠 후 설치기사가 A씨의 신혼집에 방문했다. 설치를 마친 기사는 추가설치비 30만원을 요구했다. 거의 제품가와 맞먹는 금액이었다. 깜짝 놀란 A씨가 내역을 묻자 “실외기 금액이 추가되었고 냉난방기형이라 질소브로잉 작업을 했다”며 “매립배관이라 용접비가 발생했으며 냉매도 충전했다”고 말했다. A씨는 설치기사의 업계용어들도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쨌든 너무 비싸다”고 항의 해봤지만 설치작업이 이미 끝난 후였기에 결국 추가비를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제품가격만 보고 싸게 산 줄 알았는데 속았다는 생각에 기사가 돌아간 후에도 울분이 가시지 않았다.
여름이 다가오며 에어컨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에어컨 덤터기' 수법이 급증해 소비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9일 한국소비자연맹에 따르면 1372상담센터 한 곳에 접수되는 ‘에어컨 및 설치에 관한 불만신고’는 매년 6000건에 달한다. 이 중 ‘설치비 불만’에 관한 신고가 25% 이상이다.
덤터기 업체들의 수법은 이른바 ‘최저가 낚시’로 불린다. 가격비교 화면을 보여주는 오픈마켓에서 싸게 파는 것처럼 최저가 금액을 내걸고 결제를 유도하는 것이다. 그렇게 일단 구매를 시키고 난 후 현장에서 상당한 ‘추가설치비’를 요구한다.
문제는 이런 추가비 대부분이 알고 보면 부당한 비용이라는 사실이다. 설상가상 소비자가 지불하는 최종가격을 더하면 최저가는커녕 일반가보다도 높은 덤터기 금액으로 둔갑한다.

대표적인 덤터기 사례 중엔 ‘실외기 별도’ 수법이 있다. 에어컨은 실내기와 실외기가 한 제품이라는 걸 알면서도 실외기 가격을 빼고 어거지로 최저가를 만드는 것이다. 고객이 현장에서 실외기 비용이 별도였다는 사실을 알고 반품시키려 하면 5만원의 반품비를 요구한다. 제품이 배송된 후의 반품비용은 고객부담이라는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반품비가 부담스럽고 재주문이 번거로운 고객 상당수가 이런 과정에 의해 덤터기 비용으로 에어컨을 구매한다.
원래 없어야 할 추가비를 요구하는 일도 빈번한다. 고객이 에어컨 설치에 관해 모른다는 점을 알고 속이는 것이다. 예컨대 냉난방에어컨은 설치 전 배관 수분을 제거해 열효율을 높이는 진공작업이 필수다. 필수항목이기에 기본설치비에 포함되어 있는 무료항목이다. 하지만 덤터기 업체들은 이 항목도 추가옵션으로 빼서 온라인 판매가를 낮춘다. 역시나 현장에서 5만원의 추가비를 요구한다.
신제품의 가스충전 역시 흔한 사례다. 에어컨 신품은 평균 배관길이에 맞게 이미 가스가 충전된 상태로 공장 출고된다. 배관을 연장하지 않으면 추가비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덤터기 업체들은 이미 있는 가스를 충전했다 속이고 3만~5만원의 추가비를 요구한다.
덤터기 업체들로 인해 피해 입는 건 소비자뿐만이 아니다. 결국 선량한 설치기사들에게도 피해가 돌아간다. 덤터기 사례가 워낙 많다보니 이젠 정당한 추가비를 요구해도 고객이 의심부터 하게 된 것이다. 한 에어컨 설치기사 이모(42)씨는 “사기성 추가설치비를 받는 업체들 때문에 결국 일하기 힘들어지는 건 선량한 기사들”이라며 “정당한 비용을 말해도 사기꾼인 것처럼 대하는 고객들이 많아 일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이씨에 따르면 이런 덤터기 업체 상당수는 설치조차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 값싼 중국산 자재를 쓰고 필요한 작업을 생략하며 소위 ‘날림’으로 설치한다. 여름 한 철만 겨우 가동될 정도로 대충 설치하고 사라지기에 몇 개월 후면 고장이 나기 일수다. 이씨는 “이때 고장접수를 해봤자 이미 폐업하고 다른 사업자로 일하고 있다”고 악덕업체들의 관행을 설명했다.
이 사실을 알기 어려운 소비자는 비용이 저렴한 업체를 우선적으로 찾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정상적인 가격을 받는 선량한 업체들은 가격경쟁에서 밀려 오히려 도태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시장 배경이 이렇다보니 최근엔 ‘정직한 에어컨 쇼핑몰’을 표방하며 시장개선을 약속하는 스타트업도 등장했다. 홈·오피스 설치 플랫폼 쓱싹이 출시한 자체 에어컨 쇼핑몰 ‘쓱싹스토어’는 모든 추가설치비 내역과 설치과정을 투명히 공개하며 설치 후에도 안심할 수 있도록 설치AS 보증서를 발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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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쇼핑사이트 G마켓과 옥션은 자체적인 에어컨 판매 정책인 ‘클린시스템’을 운영하며 덤터기 에어컨 업체들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에어컨 제조사가 배포한 설치 조견표 사용, 지역에 따른 명확한 유료·무료배송 기재 등 에어컨 판매분야 특수 가이드라인을 적용해 관리하는 것이다. 가이드 위반이 3회 적발되면 에어컨 판매권한을 삭제해 퇴출 조치한다.

박미주 기자 beyon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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