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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이트]"개인의 가치관 무시하는 세태 달라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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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닝' 전종서

[라임라이트]"개인의 가치관 무시하는 세태 달라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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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부여나 물음표 대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행복·불행에 집착하지 않는 배역, 감정을 찾아내 표현
세상은 편해졌지만 더 열심히 뛰어야 하는 미스터리…생애 첫 상업영화 "사로간 존중하는 마음으로 연기"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에서 해미(전종서)는 주체가 아니다. 종수(유아인)의 시선에 대상화된 인물이다. 한 번도 단독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녀는 종수와의 두 번째 만남에서 섹스를 하고 아프리카로 훌쩍 여행을 떠난다. 벤(스티븐 연)이라는 남자와 함께 다시 나타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종잡을 수 없는 행위는 종수의 집착과 혼란을 부른다. 그녀는 욕망에 솔직하고 적극적이다. 하지만 얼굴에 항상 짙은 그림자가 있다. 가난한 삶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겠지만 다른 방법으로 해답을 구하려고 애쓴다. 영국의 작가 로렌스 반데어 포스트가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들에게서 들은 '그레이트 헝거(Great Hunger)'다. "리틀 헝거(Little Hunger)는 배를 채울 음식을 원하지만 모든 배고픈 자들의 으뜸인 그레이트 헝거는 '의미'에 굶주려 있다." 해미는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구하려고 한다. 그녀를 연기한 전종서도 비슷한 삶을 추구한다.


-해미는 종수의 시선에 대상화된 배역이에요. 배우도 비슷한 것 같아요. 대중의 시선에 대상화되곤 하니까요.
"배우도 촬영하는 순간만큼은 주체가 될 수 있어요. 살아있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잖아요. 배역에 숨을 불어넣으니까 감독에게 사용된다는 표현이 적당할 듯해요. 아직 표현하는 기술이 서툴러요. 버닝도 주어진 대로 열심히 했을 뿐이에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버닝은 인물은 물론 공간까지 메타포(은유)이자 기호로서 도구화된 영화에요. 표현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영화죠. 촬영하면서 매 신들에 물음표를 던지지 않았어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였죠. 그래서 완성된 영화를 보며 제가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함의를 몰라도 연기에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해요.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우선이니까요. 이창동 감독도 그걸 원했을 거예요. 어떻게 표현하라고 일일이 설명하지 않으세요. 배우가 스스로 감정을 찾아내고 표현하면서 얻는 자유를 존중하시는 듯해요."


[라임라이트]"개인의 가치관 무시하는 세태 달라졌으면"



-해미와 닮은 구석이 많아 보여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웃음). 눈물이 많은 편이에요. 너무 기분이 좋거나 화가 나면 울어버려요. 그 감정을 숨기려고 하지 않아요. 희로애락의 끝이 눈물로 발산되는 기분을 즐기죠. 아무래도 직접 연기한 배역이다 보니 해미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 같아요. 텍스트에 씌워졌지만, 저의 일부라고 할 수 있죠."


-버닝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공허함과 몸부림을 다루고 있어요. 20대로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나요.
"세상이 좋아지고 있잖아요. 보다 정교해지고 편리해졌죠.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따라잡는데 어려움이 있어요. 그로 인해 고찰할 거리가 새로 생겼죠. 빠른 인터넷, 비싼 밥값. 하나부터 열까지 좋아졌지만 그걸 온전하게 누리려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따라가야 해요. 그렇게 살아야만 지탱할 수 있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요. 이창동 감독이 그런 사회에서 생기는 괴리를 미스터리로 본 듯해요. 산업은 발달하고 삶은 윤택해졌다는데, 젊은이들의 현실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잖아요. 거기서 생기는 억울함과 분노가 이 영화에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버닝이 생애 첫 상업영화에요.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듯해요.
"전문가들의 작업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부담은 있었어요. 철두철미한 촬영장에서 어떻게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모든 분들께서 저를 존중해주셨어요. 나이나 경력을 떠나 인간적으로요. 그 덕에 다 같이 하나가 되어 무언가를 만든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어요."


[라임라이트]"개인의 가치관 무시하는 세태 달라졌으면"



-서로 간 존중이 해미를 연기할 수 있었던 비결이군요.
"촬영 전부터 제 그릇이 아무리 작아도 함께 하기로 한 이상 왈가불가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인간은 모두 동등하잖아요. 인종, 성별, 사회적 지위를 떠나 함께 무언가를 이루는 자체가 중요한 거예요. 그 동등한 관계에 차이가 생기면 문제가 돼요. 그래서 특정한 잣대를 세우지 않으려고 했어요. 두루뭉수리로 관념만 가지고 있었죠. 제작진이나 상대 배우 모두가 그랬던 것 같아요. 그 덕에 정답이 아닌 연기를 하면서도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었죠. 제 삶도 변했어요. 상대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화해야 진정성 있는 이야기가 오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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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존중이 많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듯하네요.
"학교에서만 해도 적잖은 곳에서 선생님과 학생 사이 존중이 결여돼 있는 듯해요. 선생님은 함부로 학생을 대해선 안 돼요. 학생도 무조건 복종할 필요가 없고요.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말들이 충분히 있잖아요. 그 범위를 벗어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제게는 저만의 가치관과 생각이 있어요. 그걸 누구에게 강요하거나 옳다고 주장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걸 말할 수 있으며, 이 역시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말에 귀를 닫아버리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나이가 어리면 문제아로 넘겨짚기도 하죠. 그런 세태가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좋은 작품은 그런 세태에 영향을 주기도 해요.
"그래서 배우를 하는 것일 수도 있겠죠. 작품뿐 아니라 지금 이 인터뷰도 그런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요. 지금 제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짓는지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네요. 매 순간마다 의미가 있고, 그걸 찾는 것이 인간의 삶처럼 느껴져요. 앞으로 어떤 삶을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의 행복에 충실하고 그에 맞게 지혜로운 선택을 하고 싶어요. 그렇게 그레이트 헝거로 살아간다면 조금 더 나아진 배우로 성장해 있지 않을까요."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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