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의 300% '싱글세'
로마제국의 '노총각세'와 '세 아이법'
사회구조적 변화없는 재원투입... 백약이 무효란 교훈 남겨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올해 1분기 출생아 숫자가 통계작성 이후 최저수준인 8만명대로 떨어졌다는 소식에 인구절벽 우려가 더욱 커졌다. 2006년 이후 10여년간 저출산 고령화 대책으로만 225조원 이상의 재원이 소모됐으나 가파르게 진행 중인 저출산 문제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저출산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자연 관심을 받게 된 것이 과거 역사 속의 저출산 대책들이다. 저출산은 흔히 산업화시대 이후 현대사회의 문제로 인식돼있지만,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느시대에나 겪은 문제였으며, 오히려 유아사망률이 훨씬 높았던 고대에는 지금보다 훨씬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돼 기상천외한 대책들이 쏟아졌다.
잘 알려진 고대시대 저출산 대책으로는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중 하나인 스파르타의 저출산 정책이다. 군사국가였던 스파르타에서 인구감소는 군인 부족과 국가 멸망으로 이어지는 중대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인구 유지를 위한 강압적인 저출산 정책이 시행됐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대표적인 정책이 우리나라에서도 얼마전 논란이 됐었던 '싱글세'로, 미혼 독신 남녀에게 본래 세금의 300%씩 싱글세를 걷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이와 반대로 아이가 셋 이상인 가정은 노동을 면제시켜주고, 넷을 두면 세금을 완전히 면제시켜주는 다둥이 혜택 정책도 있었다.
싱글세는 고대 로마제국에도 도입됐는데, 기원전 403년 시작된 '노총각세(aes uxorium)' 부과를 시작으로 기원전 18년 아우구스투스 집권기에는 여러가지 저출산 정책들이 공식적으로 입법화되기도 했다. 미혼자들은 아예 부모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게 하고, 결혼은 했어도 자식이 없는 사람은 상속세로 50%를 내야하는 법률을 만드는 한편, 자녀가 없으면 고위공직에 오를 수 없게 제한을 두기까지 했다. 이와함께 아이를 세명 이상 나으면 각종 혜택을 부여해주는 '세 아이법(jus trium liberorum)'이란 법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 조선시대도 예외가 아니었다. 빈부격차 심화로 혼수 장만이 어려워 결혼을 못하는 양인 여성의 숫자가 늘어나자 성종 때는 30세 이상 미혼 여성의 숫자를 조사시킨 후, 혼인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폈으며, 혼기가 넘었는데도 시집을 안가면 그 집안 가장을 처벌하는 등 강압적인 저출산 대책들이 줄을 이었다.
당시에는 유아사망률이 워낙 높았던 탓에 인구 유지를 위해 최소 한 가정당 3~4명의 아이는 낳아야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지금보다 훨씬 강경한 저출산 대책들이 동원됐다. 하지만 부유층은 부유층대로, 서민들은 서민대로 저출산을 선호했다. 부유층들의 저출산이 심화된 주된 이유는 상속문제 때문이었다. 장자에게 독점 상속하고 나머지 자녀들은 분가시키던 종래 상속법이 깨지고 자녀 균분 상속제를 정부에서 강제하기 시작하자 귀족들과 부유층들은 가문의 재산이 쪼개져 생활수준이 낮아질 상황을 피하고자 자녀를 일부러 적게 낳기 시작했다.
한편 서민층들은 빈부격차 심화로 자영농 계급이 몰락하고 도심지의 임금노동자로 전락, 자산 축적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결혼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저출산이 계속 심화됐다. 사회구조적 문제를 풀지 못한 상태에서 각종 지원, 강압적인 대책을 써도 백약이 무효였던 것이다. 고대부터 진행돼온 이런 역사 속의 각종 대책들을 토대로 수백조원의 재원을 쏟아붓고 있는 현대의 저출산 대책들 역시 사회구조적 문제의 해결없이 진행되다보니 이렇다 할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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