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의 민낯⑫] 전 세계 저작권법, AI 창작활동에 혼란
현행법상 저작자는 저작물 만든 '사람'만 인정
창작물 제작 과정에서 개발자·이용자 등 다양한 사람 참여해 구분 힘들어
저작권 정의부터 저작권 기한까지 조정 불가피… 산업 발전 끌어낼 해법 필요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끝나자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장엄한 선율에 심취해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100년 넘게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대가' 이아무스의 음악은 늘 이런 반응이다. 변치 않는 열정, 쇠퇴하지 않는 실력은 수십년 째 이어지는 인기의 비결이다. 그의 음악도, 창작활동은 언제나 한결 같다. 이렇게 '영원한 작곡가'로 살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인공지능(AI)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말라가 대학이 개발한 AI 작곡가 '이아무스'가 자리 잡은 미래 시대의 모습을 그려본 내용이다. 이 같은 미래는 현실이 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네덜란드 연구진은 2016년 램브란트의 화풍을 그대로 재현하는 AI '넥스트 램브란트'를 공개했다. 딥러닝 기술을 통해 렘브란트의 그림을 학습한 뒤 구체적인 요구사항과 함께 명령만 내리면 램드란트 화풍으로 그림을 그려낸다. 그 밖에도 소설을 쓰는 구글의 AI, IBM의 법률분야 AI 로스(ROSS)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의 고유의 영역이었던 '창작'까지 침범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 조사 결과, AI와 로봇이 대체하기 가장 어려운 직업으로 꼽혔던 화가, 작가, 작곡가 등도 안전하지 못한 셈이다. 이 같은 변화에 따라 AI가 만든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 논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디까지가 AI의 창작물인가=국내외 지식재산 법제는 대부분 '창작자 주의'에 입각한다. 우리 나라 저작권법에 따르면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다. 저작자는 저작물을 만든 사람으로 규정된다. 즉, 현행법상 인간이 만든 것만 창작물로 인정된다.
이를 토대로 AI의 창작물을 부정하는 이들도 있다. AI는 도구일 뿐이며, 권리와 책임의 주체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AI가 만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앞으로도 다양한 창작물이 쏟아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새로운 음악과 소설 등 AI 콘텐츠의 사용과 유통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손승우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현행 저작권법 상 저작자 생존 기간부터 사후 70년까지로 설정된 권리 존속기간을 AI 창작물에 대해서는 상당히 줄여서 적용할 필요가 있다"며 "현 저작권법이 데이터베이스(DB) 제작자 권리를 5년 단기로 규정한 것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뜨는 뉴스
◆AI가 만든 작품의 주인은 누구?= 지금의 저작권법이 '인간'을 대상으로 한 만큼 앞으로는 새로운 논의의 틀이 필요하다는 것이 공론이다. AI 자체를 인격을 가진 주체로 보지 않는다면, AI의 창작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AI가 만든 작품은 창작자를 나누기도 어렵다"라며 "AI 알고리즘을 개발한 프로그래머나 빅데이터를 입력해 AI를 학습시킨 사람, AI에게 창작을 주문한 이용자일지 구분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일본, 중국과 독일, 프랑스 등 이른바 '대륙법' 계열을 따르는 국가들은 사람을 중심으로 저작권을 해석하고 있다. 반면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홍콩, 싱가포르, 인도 등 '영미법' 계열 국가들은 저작물을 위주로 저작권을 설명한다. 저작권을 창작물을 통해 재산적 이익을 볼 수 있는 권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 계열의 법안 모두 AI가 만든 작품의 주인을 가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인간을 저작자의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 정확히 이용자인지, 개발자인지 규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AI 산업 장려 방향으로 규정해야"= 한편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는 저작권법 연내 개정에서 AI 저작권 부문은 제외됐다. 여러 쟁점들이 남아있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AI에게 다양한 데이터를 입력해 학습시키는 ‘정보해석’을 할 때 타인의 저작물을 활용하는 행위를 허용할지에 대해 의견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영국이나 독일처럼 비영리적인 목적일 경우에만 허용한다면 오히려 AI를 자유롭게 학습시키고 발전시키기 힘들다는 우려다. 손 교수는 "AI 저작권의 독점 등 침해를 막는 것과 동시에 AI 산업의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며 "법학적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경제학적, 사회학적 관점에서도 심도 있는 논의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