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테 안경과 인민복으로 '사회주의 국가 지도자' 뽐내
줄무늬에 들어간 인민복…무겁지 않은 분위기 연출 '센스'
파란색 넥타이 선택한 문 대통령 '시작' 뜻 담아
[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박미주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순간. 27일 오전 9시30분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만난 두 정상은 악수를 나누며 시종일관 미소로 반가움을 전했다. 또한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넘어온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손을 덥썩 잡고 다시 북쪽도 한 번 밟아 박수를 자아냈다.
남북정상회담일인 27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진행될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는 모습이 중계되고 있다./고양=강진형 기자aymsdream@
두 정상의 패션도 화제다. 이들이 착용한 패션에는 '정치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다. 말 그대로 '패션 정치학'을 뽐낸 것.
김 위원장은 '양복' 대신 '인민복'을 착용했다. 김 위원장의 독특한 수트핏을 내심 기대했던 외교가 일각에서는 아쉽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기도 했지만, 인민복을 선택하는 것이 김 위원장의 정치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인민복은 사회주의 국가 지도자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외교무대에서는 늘 인민복을 착용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날 때, 평양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대북특사를 만날 때, 남한예술단의 공연을 볼 때도 모두 인민복을 입었다. 이는 강한 사회주의 국가 체제의 대표라는 것을 의상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송명견 동덕여대 패션디자인학과 명예교수는 "사회주의 지도자로서의 정체성을 옷에 잘 드러내고 있다"며 "뿔테 안경도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송 명예교수는 "이번 인민복은 줄무늬가 들어간 점이 특징인데, 위엄 있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너무 무겁지 않은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손을 맞잡고 38선을 넘고 있다./고양=강진형 기자aymsdream@
외교가에서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인민복이 지닌 공산체제에 대한 고착된 이미지를 씻고, 평화를 추구하는 상징적 의미에서 수트 입은 모습을 보여주길 내심 기대해왔다.
김 위원장이 수트를 착용하고 정상회담에 임한다는 것은 그동안 북한이 취해왔던 사회주의 노선에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세계 정치의 흐름에 따르고, 정상적인 국가를 향한 의지를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공식석상에서 종종 수트 입은 모습을 보여줬다. 올해 신년사 발표 때는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즐겨입는 튀지 않는 무지 원단의 감색 수트를 입지 않고 은회색의 수트를 입어 남다른 패션감각을 과시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2016년 노동당 대회와 2012년 제1위원장 추대 행사 등에서도 수트를 입었다. 아버지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민복을 고수했던 것과는 다른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패션은 수트를 즐겨입던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을 따르는 모양새다.
특히 김 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을 5일 앞둔 지난 22일 황해도에서 관광버스 전복사고로 중국인 관광객 36명이 사망한 사고가 발생하자 흰색 가운을 걸치고 부상자가 치료 중인 병원을 방문해 눈길을 끌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넥타이를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던져왔다. 상황에 따라 넥타이의 색깔과 무늬를 바꾸는 방식이다. 정치적 넥타이 선택은 지난해 대선후보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문 대통령은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주로 했던 스타일에 맞춰 줄무늬 넥타이를 착용했다. 강인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기 위해 연출한 스타일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는 중국인이 선호하는 붉은색 넥타이로 러브콜을 보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갈등이 한창이던 지난해 7월 베를린 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붉은색 넥타이를 했지만, 시 주석은 파란색 넥타이를 했었다.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열린 베트남 다낭에서는 시 주석과 함께 붉은색 넥타이를 매고 회담을 진행했다. 이 회담은 사드 배치 이후 냉각됐던 양국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계기가 됐다.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은 양국 사이의 '새로운 출발'을 한 입으로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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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시절부터 취임 첫날까지 파란 넥타이를 선택한 그에게 '파란색'은 의미가 남다르다. 이번에도 파란색 넥타이를 맨 것은 '시작'과 함께 통일의 염원을 담은 한반도기의 의미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11년만의 남북 정상회담에서 '파란 넥타이'로 평화 한반도 이룩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상징한 것.
한편 김 위원장을 수행한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회색 정장 차림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회색 인민복과 갈색 점퍼를 입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2차 남북정상회담 때는 짙은 베이지색 야전 점퍼를 입었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박미주 기자 beyon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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