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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잠들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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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잠들지 말지어다 허진석 문화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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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에 입사해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나를 가르친 선배는 눈이 몹시 나빴다. 어릴 때부터 나빴던 선배의 눈이 좋을 때가 잠깐 있었는데 군대에 다녀온 직후였다고 한다. 선배는 해안초소에서 근무하며 매일 먼 바다를 바라보니 눈이 좋아지더라고 했다. 눈 체조를 하거나 도구를 사용해 안구와 거기 딸린 근육을 단련하면 눈이 좋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갑자기 좋아지지는 않는다. 나도 대학생 때 쓴 안경을 벗지 못하고 있다. 수술 같은 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요즘 하늘에서 별을 많이 찾기 어려움은 공기가 탁하고 지상에 밝힌 조명이 지나치게 밝기 때문이겠지만 내 눈이 흐림도 한 몫 하리라. 시원한 별빛이 한꺼번에 쏟아질 것 같던 어린 날의 밤하늘은 다시 보지 못한다. 스칸디나비아를 여행할 때 기대를 걸었지만 백야 무렵이어서 은하수 보려던 꿈을 접어야 했다. 다만 북두칠성은 지금도 잘 보인다. '큰곰자리'라는 서양식 이름에 밀렸으나 우리는 아직도 이 별자리를 '국자 모양'이라고 설명한다.

국자 손잡이 끝에 있는 별은 알카이드다. 여기서 국자머리 방향으로 미자르, 알리오츠, 메그레즈, 페크다, 메락크, 두베다. 북두칠성 옆에 작은 별이 있다. 눈이 좋은 사람만, 그것도 맑은 날에만 볼 수 있다. 손잡이 끝에서 두 번째 별인 미자르 옆에서 흐릿한 빛을 내는 별이다. 이름은 알코르(Alcor). 고대 로마의 군대에서는 이 별을 시력을 측정하는 데 이용했다. 그래서 시험성(試驗星)이라고도 한다.


꿈이나 기억 속에 저장되어 갈수록 어렴풋이 잊히는 것은 별뿐이 아니다. 또한 그럴수록 기억의 저장고에는 지켜야 할 보물이 늘어간다. 내게는 고등학교 2학년일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목소리와 뒷짐을 지고 앞장서 걸을 때 보이던 그의 발그레한 손바닥, 어린 내가 배앓이를 할 때 '쎄쎄'를 해주던 어머니의 손길이 먼 우주로 떠난 보이저 호에 실린 인류의 메시지처럼 각인돼 있다. 기억은 때로 현재의 감각에 매몰되어 재생 불가능한 소스가 된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에는 오스만의 전통 화풍인 세밀화에 대한 설명이 자주 나온다. 오스만의 화가들이 베네치아 회화라는 서양의 화풍과 세밀화의 전통 사이에서 갈등하는 대목은 실감 난다. 화원장 오스만이 황금 바늘로 자신의 눈을 찔러 시력을 잃는 장면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가련하지만 또한 위대한 화원장은 시력을 버림으로써 내면에 간직한 세밀화의 전통을 봉인한다. 시대마다 인간에게는 보고 지켜야 할 가치가 따로 있다.


2018년의 봄. 우리는 역사를 살고 있다. 내가 글을 쓰는 지금 조명균 통일부장관이 이끄는 우리 대표단이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북한 대표단과 만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준비다. 다음달 27일 양쪽 정상이 만난다. 창밖을 스쳐가던 '현재'가 방향을 바꿔 우리에게 날아와 눈에 박힌다. 내 눈을 밝혀 달라고 기도하고 싶다. 붕어처럼 눈을 뜬 채 이 순간을 기억하며 그 결실을 역사의 들머리에 새길 수 있기를. 그러니 그대여….


Nessun dorma, Nessun dorma! (잠들지 말지어다, 잠들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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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부국장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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