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 연계가 관건

[아시아경제 정완주 정치사회 담당 선임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으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접견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방북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8일 미국으로 출발한다.
특사단의 수석특사인 정 실장은 6일 귀국 후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미국에 전달할 북한 입장을 저희가 별도로 추가로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정 실장과 서 원장이 들고 가는 ‘김정은 메시지’가 과연 무엇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메시지의 내용에 따라 한반도 평화 정착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
정 실장은 브리핑에서 “북측은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비핵화 전제 조건은 체제보장이라는 의미다.
북한은 2002년 10월 미국을 향해 불가침조약 체결을 제의했다. 북한이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임스 켈리 미국 특사에게 시인하면서 핵 파문이 불거진 직후다. 사실상 핵과 평화협정의 연계를 이때부터 시작한 셈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핵무기 개발은 미국의 군사적 공격에 대비한 자위용 수단이라는 점을 내세워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계속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이 체제를 보장해 준다면 핵 폐기를 위한 대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으로 전환한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체제 보장의 수단은 북ㆍ미 평화협정(불가침조약) 체결이다.
김 위원장은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승부수가 될만한 메시지를 던질 수도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비핵화 조치 계획과 일정을 전격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는 것이다.
미국의 가장 큰 관심사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점을 활용하는 전략이다. 시간끌기용 대화가 더 이상 먹힐 수 없다는 주변 상황의 인식을 고려해 바닥패를 먼저 내밀 것인지가 관전포인트다.
◆평화협정과 주한미군 철수를 연계할까
북한은 그동안 틈날 때마다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해왔다. 주한미군을 중심으로 미국의 치명적인 전략자산이 한반도 주변에 배치됐기 때문에 항상 군사적 압박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대외적으로 미국과의 평화협정이 체결될 경우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평화협정의 전제 조건으로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내들 것인지는 미지수다.
미국과의 직접 협상에 나섰던 북한의 행적을 보면 어느 정도 답이 보인다.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이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나눈 대화 중 눈길을 끌만한 대목이 나온다. 북한은 주한미군을 그대로 둔 채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체결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 시절인 1992년 김용순 노동당 비서가 뉴욕을 방문해 메시지를 전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북ㆍ미수교가 성사되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이는 북한이 대외적인 입장과는 달리 평화협정 등을 위한 협상에 나설 때는 과감하게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철회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김 위원장이 4월 한미 연합군사훈련 재개를 인정하듯이 주한미군의 존재도 인정할 경우 북ㆍ미대화의 큰 걸림돌 중 하나가 제거되는 셈이다.
◆전격적인 북ㆍ미 정상회담 카드를 내밀까
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의 개선 의지를 밝힌 이후 두 달여 동안 보여준 파격은 항상 예상을 뛰어넘었다. 국내 북한 전문가들이 거의 예상하지 못한 ‘김여정 특사’ 파견과 남북정상회담 제안 카드는 사실 충격적이었다.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나고 온 정 실장은 김 위원장의 외교 스타일에 대해 “솔직하고 대담하다”고 평가했다. 남북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비핵화 문제 등에 대해서 솔직하고 분명하게 입장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도덜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직접 통화를 하거나 전격적으로 정상회담을 하자고 제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에 대해 "그들이 진지하다고 생각한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기자회견에서 이 같이 밝힌 뒤 "매우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긍정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는 두고 볼 것"이라며 "한국과 북한에서 나온 발표들이 매우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 입장을 듣고 이날 트위터 계정에 "이 세계는 주시하며 기다리고 있다"며 "헛된 희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은 어느 방향이 됐든 열심히 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입장이 확고하다고 판단할 경우 특유의 파격을 즐기는 트럼프 대통령의 특성상 김 위원장과 어떤 형태로든 직접 대화하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물론 건너야할 다리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입장이 확고하다고 판단할 경우 특유의 파격을 즐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가 앞으로 최대 관심사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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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이날 미 국무부의 입장이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헤더 노이트 국무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인 일련의 상황을 놓고 “많은 사람이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어 문 대통령의 특사단이 워싱턴 DC에 오면 "다음으로 우리가 어떤 조치를 취할지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들어 급속도로 진행되는 남북관계의 해빙 무드처럼 북ㆍ미관계도 앞으로 어떤 식으로 해빙기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김 위원장의 메시지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정완주 정치사회 담당 선임기자 wjchu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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