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뉴스 군만두]
필수기능만 갖고 MWC서 인기몰이
4G 접근성 세계1위 한국에선 글쎄
고용량·고품질 콘텐츠 이용 보편화
프리미엄폰 지배적…틈새시장 적어
고가요금제+고가폰 판매 상술도 한몫
시속 300㎞로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가 있는데 시속 100㎞로밖에 달릴 수 없는 차가 잘 팔릴 리 없겠죠. 마찬가지로 이유로 4G LTE망이 전국을 뒤덮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저가 스마트폰이 설 자리는 정말 없는 걸까요.
지난주 막을 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관람객의 발목을 잡은 휴대폰은 단연 '노키아8110'이었습니다. 외형이 바나나를 닮아 '바나나폰'으로 불리는 복고풍 모델이죠. 가격은 79유로, 10만4000원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더군요. 전화와 문자는 물론이고 카메라ㆍ인공지능(AI) 플랫픔 '구글 어시스턴트'도 내장돼 있습니다. 노키아 말고도 알카텔은 '1X'를, ZTE는 '템포고'를 전시했는데 모두 10만원대 제품입니다.
그런데 글로벌 IT 업계는 왜 이런 값싼 제품에 큰 관심을 보이는 걸까요. 그들 마음 속에 들어가본 것은 아니지만 '스마트폰 중독' 현상에 지친 심리가 작용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 필요한 기능만 담은 스마트폰으로 디지털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데까진 낮춰보자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10만원대 스마트폰이 한국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네트워크 품질조사 글로벌 전문업체 오픈시그널이 발표한 '2018년 2월 LTE 품질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4G 접근성은 97.49%로 세계 1위입니다. 고용량ㆍ고품질 콘텐츠 이용에 최적화된 환경이란 것입니다. 서비스 품질도 당연히 4G에 맞춰져 있습니다. 고화질 콘텐츠ㆍ고음질 스트리밍ㆍ고성능 게임에 대한 수요는 끝없이 늘어만 갑니다.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1인당 4G 데이터 사용량은 이미 6기가바이트(GB)를 넘어섰죠.
통신업계 관계자는 "한국시장에서 고가 프리미엄 스마트폰은 옵션이 아니라 표준"이라고 말했습니다. 전화나 문자, 간단한 SNS 정도만 가능한 스마트폰으로는 틈새시장도 잡기 힘들다는 관측입니다.
기본적 기능만 갖춘 스마트폰이 관심을 끄는 건 사실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불가피하게 그런 단말기가 필요한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2G, 3G가 주력인 개발도상국 등에서는 갤럭시S9보다 바나나폰이 더 유용하겠죠. 나라가 너무 커서 4G, 5G를 모두 깔 수 없는 국가에서도 저가 스마트폰은 생존력이 있을 겁니다.
MWC에서 목격한 바나나폰에 대한 열광은 한국의 뛰어난 네트워크 인프라뿐 아니라 이통사의 뛰어난 상술까지 되돌아보는 계기도 됐습니다. 이통사가 단말기 판로를 독점하는 상황에서, 이통사는 고가요금제 판매를 위해 고가단말기에 혜택을 몰아줍니다. '고가단말기+고가요금제' 형태가 잘 팔리는 이유죠. 조금만 더 돈을 내면 최신 스마트폰을 살 수 있다는 '유혹적 상술'이 한국인을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호갱'으로 만든 주범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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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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