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의 일자리 예산을 편성한 정부가 청년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적극적 재정정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불분명하다. 정부 예산안이 확정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경 논의는 이르고,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정치적 추경'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청년 일자리에 돈 아끼지 않겠다는 정부…효과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부총리는 지난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청년 일자리 정책과 관련해 "조세·규제·금융 등 정부의 정책 수단을 망라한다"며 "특단의 대책을 고려하기 때문에 필요하면 추경 편성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일자리 예산은 본예산 기준 17조원으로 2016년보다 7.9%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자리 예산은 정부의 직접 일자리사업이나 직업훈련, 고용서비스, 고용장려금, 창업지원, 구직급여 등에 투입되는 예산이다. 그러나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9.8%를 기록해 2016년과 똑같은 수준이다.
올해 일자리 예산은 19조2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2.6% 증가했다. 또 다시 역대 최대 규모다. 기재부는 지난달 일자리 예산 6조8000억원을 올해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기로 결정했다. 1분기 일자리 예산도 역대 가장 많은 수준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추경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건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일자리 정책에 아낌없이 돈을 쏟아부었다가 향후 재정 건전성이 악화될 우려도 있다. 지난해 7월 국회를 통과한 11조원 규모의 일자리 추경은 추경 편성 요건에 맞지 않고 '공무원 늘리기용'이라는 야권의 비판을 받기도 했었다. 이번에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추경을 활용해 선심성 정책을 펼치는 것 아니냐는 정치적 논쟁을 촉발시킬 가능성이 있다.
◆아일랜드, '청년보장제' 시범사업…日 청년 일자리 질 향상 초점= 수조 원의 예산을 쏟아 부어도 청년 실업난을 해결하긴 쉽지 않다. 다만 청년 고용상황이 개선되고 있는 다른 나라의 일자리 정책에서 힌트를 얻을 순 있을 것이다.
아일랜드 발리문은 유럽연합(EU) 최초로 '청년보장제'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발리문은 수도 더블린 중심가의 북쪽에 위치해 있는 도시다. 이 지역 내에 거주하는 18~24세의 모든 청년들은 4개월 이내에 지역의 일자리 센터에 등록한 후 상담원과 개별 미팅을 가져야 하며, 최초 상담 이후 4개월 내에 일자리·훈련·인턴·일경험·학업 유지 등의 제안이 이뤄져야 한다. 청년 구직자를 동질적인 집단으로 보지 않고 취업능력에 따라 3개 집단으로 구분해 맞춤형 서비스가 제공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덴마크는 청년이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과 자격을 향상시키는 교육·훈련, 구직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청년가이드센터'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센터를 지원하고, 센터 근무자들은 학교로 찾아가서 취업을 지원하고, 센터·고용지원센터·학교가 함께 회의를 통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식이다.
김주일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가 쓴 '해외 선진국가의 청년 일자리 정책과 지방정부의 역할' 보고서에 따르면 덴마크는 청년이 실업상태가 되면 즉시 센터에 등록을 해야 하고, 구직 활동을 문서로 보고해야 한다. 합리적인 일자리에 대해선 이전 실업기간에 상관없이 수용해야 한다. 청년층의 장기 실업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고용상황이 개선되고 있는 일본의 경우는 청년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정책에 집중하고 있다. 일본의 청년 실업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일본 대학 졸업예정자 중 취업희망자 대부분은 졸업과 동시에 취업이 결정될 정도다.

일본의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따른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일본의 청년 고용사정 개선을 뒷받침하는 요소는 따로 있다. 우선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가 작아 중소기업 취업 기피 경향이 크지 않다. 2015년 기준 일본 20~24세의 소기업(100인 미만)과 중기업(100~999인)의 월평균 임금수준은 대기업(1000인 이상) 대비 각각 92.2%와 95.5% 수준으로 임금 차이가 크지 않다. 또 아베 정부는 청년 일자리 질의 개선을 위해 지난해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이 포함된 노동개혁 방안을 확정했다.
일본은 청년 일자리의 질을 높이기 위해 2015년부터 '청년고용촉진법'을 실시하고 있다. 청년이 적절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고, 직업능력 개발·향상을 종합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다.
청년고용촉진법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청년 채용·육성에 적극적인 중소기업은 '유스 엘(청년응원) 기업'으로 인정해 해당 기업에 대해 구인우선알선, 저금리융자 지원 등 혜택이 제공된다. 또한 구인공고를 낼 때 임금 등 기본적인 근로조건 정보를 제공하는 것 외에 근로자의 평균 근속년수, 연수제공 여부 등 직장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최저임금법 위반, 장시간 노동 등 노동법 위반을 반복하는 기업에 대해선 공공 취업알선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
◆청년 취업 통합 프로그램 제공하고 일자리 질 높여야= 일자리 예산 투입으로 얻는 효과는 한정돼있다. 청년 취업난을 극복하려면 정부와 지자체, 민간이 협력해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백화점식 정책을 나열하기보다는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정부의 청년층 일자리 지원 사업은 부처간 분절성 등으로 인해 훈련, 인턴십, 구직알선 서비스 등이 독립적으로 제공되는데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정된 예산으로 최적의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개별적 프로그램보다는 청년실업자에 대한 상담, 직업훈련, 정보제공 및 구직알선 등 다양한 서비스를 통합한 포괄적 프로그램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준영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은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라 장기적으로 예상되는 인력부족 문제에 대비하되, 대기업-중소기업 근로자, 정규직-비정규직 임금 격차를 축소하는 등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청년 취업난 해소를 위해서는 일자리의 양적 창출 이상으로 청년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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