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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블랙팬서씨, 와칸다나 잘 지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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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스러운 티찰라 세계평화 맡겨도 될까

[이종길의 영화읽기]블랙팬서씨, 와칸다나 잘 지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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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클라크 박사(1914~2005년)가 1963년 진행한 TV 토론 '흑인과 미국의 약속'에는 흑인해방 운동가 두 명이 등장한다. 맬컴 엑스(1925∼1965)와 마틴 루터 킹(1929~1968년). 각자 다른 방식의 말과 행동으로 흑인사회의 단면을 대변한다.

"무지한 흑인 목사들은 우리를 짓밟는 짐승들에게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을 내밀라고 가르쳤습니다. 킹은 현대판 톰 아저씨입니다. 집단 농장의 흑인들이 KKK단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내버려둔 것처럼 흑인을 향한 폭력에 대처하지 못하게 합니다."


"악에 저항하지 않는 것과 비폭력 저항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확실한 한 가지는 시위에 참여하고 비폭력 철학의 취지를 이해하는 대다수 흑인들이 저들이 쓰는 잔인한 방법들을 맞닥뜨리게 되더라도 폭력으로 응수하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비폭력 저항의 첫 번째 원칙을 그들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종길의 영화읽기]블랙팬서씨, 와칸다나 잘 지키세요



라이언 쿠글러 감독(32)이 연출한 영화 '블랙팬서'는 대립을 재현하는 듯하다. 사촌 관계인 티찰라(채드윅 보스만)와 에릭 킬몽거(마이클 B. 조던)가 비슷한 의견 차로 갈등한다. 킬몽거의 아버지 엔조부(스터링 K. 브라운)는 로스앤젤레스 폭동이 벌어진 1992년에 급진적 흑인해방운동을 준비한다. 조국인 와칸다에만 존재하는 희귀금속 '비브라늄'을 이용해 무기를 마련한다. 형이자 티찰라의 아버지인 티차카(존 카니)의 저지로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아버지를 잃은 킬몽거는 비장한 얼굴로 복수와 흑인해방을 다짐한다. 맬컴 엑스가 그랬듯 흑인도 폭력을 사용해 백인의 폭력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왕위를 계승한 티찰라의 견해는 다르다. 흑인들이 백인의 압제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평화적인 대화와 비폭력을 추구한다. 유엔 총회에서 국제구호를 위해 힘쓰겠다고 약속할 정도다.


티찰라에게서 킹을 연상케 하는 모습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미국 중앙정보부(CIA) 요원 에버렛 로스(마틴 프리먼)를 와칸다로 데려가 치료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전까지 와칸다는 비브라늄을 노리는 백인들을 참혹하게 죽였다. 티찰라는 로스를 치료하며 비폭력 저항 이상의 가치를 실현한다. 여기서 와칸다의 첨단과학기술은 킹과 미국인들의 연결고리가 되어 준 기독교와 같은 역할을 한다. 미국은 기독교인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백인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전파하는 킹에게 후한 점수를 줬다. 반면 미국에 적대적인 종교인 이슬람교를 신봉한 말콤을 이단아처럼 여겼다. 거칠고 선동적인 연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이종길의 영화읽기]블랙팬서씨, 와칸다나 잘 지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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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티찰라가 통치하는 와칸다는 꽤 이상적인 나라 같다. 그런데 와칸다의 정치 체계는 왕권 중심이다. 다섯 왕족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자가 호사를 누리며 나라를 통치한다. 국민들은 뉴욕처럼 고층빌딩이 여러 개 있는 도시에서 생활하지만 이런 삶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들의 생활을 조명하는 컷은 없지만 흙먼지를 맡으며 노점상을 운영하는 모습만으로도 빈부격차를 짐작할 수 있다. 와칸다의 정치는 전통을 답습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폭력적이고 불합리하기까지 하다.


이런 틀에서 볼 때 티찰라와 주변 인물들의 정체성은 모호하다. 무엇보다 전통을 계승하지 않는다. 킬몽거와의 정당한 대결에서 패하고도 인정하지 않고 반란을 일으킨다. 그의 어머니 라몬다(안젤라 바셋)는 왕궁에서 쫓겨나며 "어쩌다 와칸다가 이렇게 됐지"라고 푸념한다. 티찰라의 애인 나키아(루피타 뇽) 또한 "외부인이 왕좌를 차지했다"며 음바쿠(윈스턴 듀크)에게 병력 지원을 요청한다. 티찰라는 그녀의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이 과정에서도 전통은 배제된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년)'에서 보여준 표범의 공격성을 반영한 액션이 온데간데없다. 첨단무기에 기대어 위력을 과시할 뿐이다. 킹의 사상을 물려받은 듯하지만 왕권을 되찾기에 급급한 탐욕스러운 자다. 그런 이에게 세계 평화를 맡겨도 괜찮은 걸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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