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
일반적으로 온도가 10도 올라가면 화학반응은 두 배 빨라진다고 보면 된다. 즉 10도에서 보관하면 10년 갈 와인을 20도에서 보관하면 5년 간다는 얘기다. 와인 보관은 온도가 생명이다. 온도가 낮고 일정한 곳에 보관해야 한다. 보통 10~15 도가 보관 온도로 좋다고 하는 이유는 이는 옛날 유럽의 동굴 온도로 항상 일정한 온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서서히 숙성이 이뤄지면서 와인을 오래 보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와인에는 알코올이 10% 이상 있어서 온도변화에 따른 부피의 차이가 심하다. 20도의 와인이 40도로 되면 부피가 7~8㎖ 증가하면서 코르크에 압력을 가하고, 다시 온도가 내려가면 수축했다가, 다음에 또다시 오르는 과정을 반복한다면 코르크의 밀봉 강도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차라리 온도가 높더라도 일정한 곳이 더 낫다는 얘기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와인을 가장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온도는 화이트, 레드를 막론하고 4도라고 할 수 있다. 이때가 물의 밀도가 가장 높기 때문에 차지하는 부피가 가장 적어진다. 모든 식품은 얼지 않을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 가장 오래 간다. 그러나 이렇게 낮은 온도는 인위적으로 조성해야 하고, 꺼내서 마실 수 있는 적합한 온도로 만들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면서 라벨은 이슬이 맺혀 울퉁불퉁해지고, 냉장고가 고장이 나면 문제가 커지기 때문에 천연 동굴이 좋다고 하는 것이다. 바다 밑에 가라앉은 배에서 꺼낸 와인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비싸게 팔리는 이유는 깊은 바다 밑의 온도는 항상 4도로 일정하기 때문이다.
와인을 장기 보관하려면 습도가 적절해야 한다면서 와인셀러를 구입할 때 습도조절이 되는지 따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코르크나 스크루 캡으로 밀봉된 와인은 외부 습도의 영향을 받을 수 없다. 물론 습도가 아주 낮으면 문제가 있겠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습도가 높은 나라에서는 걱정할 필요 없다. 습도는 와인이 들어있는 병이 아니고, 와인을 숙성시키는 오크통에 영향을 끼친다. 옛날에는 오크통째로 와인을 구입해 보관하는 수가 많았으므로, 이때는 오크통 보관에 습도가 중요했던 것이다.
그 다음으로 햇빛을 보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지만, 와인을 일부러 햇빛에 노출시킬 일은 없다. 모두 상자에 넣어서 운반하고 와인 병을 실내에 두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동이 있으면 와인 보관에 좋지 않다고 하지만, 여기서 진동이란 지속적인 미세한 흔들림을 말하는데 이동할 때 출렁거림하고는 다른 것이다. 여러 학자들이 진동이 와인 보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를 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결론을 얻지 못한 상태다. 진동은 아무래도 없는 것이 낫겠지만 그렇게 큰 영향은 끼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리고 하나 더, 와인 병을 눕혀서 보관해야 한다. 이를 코르크가 와인과 닿아서 젖어야 부풀어서 병구를 잘 막는다고 하지만 과학적으로 본다면 헤드스페이스(병내 공간)를 병구 쪽에 오지 않도록 해야 공기접촉 면적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반 병 남은 콜라 병을 세워두는 것보다 눕히거나 거꾸로 두면 더 오래 가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그러니까 와인이든 아니든 모든 음료 병은 눕혀둬야 오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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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방식을 반대로 해 와인 보관에 최악의 장소는 어디일까. 온도 변화가 심하고 자주 흔들리는 자동차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 내부는 온도변화가 너무 심해 환절기 때는 낮에 에어컨, 밤에 히터를 틀어야 할 정도다. 한여름에 자동차 계기판의 온도는 90도까지 올라간다. 둘째는 자동차는 진동이 아닌 흔들림으로 여러 가지 반응을 촉진시켜 와인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가정에서는 시원한 곳에 둔다고 베란다에 내놓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도 온도변화가 엄청나게 심한 곳이다. 차라리 온도가 약간 높더라도 사철 25도 정도 일정하게 유지되는 소파 밑이 더 낫다. 와인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이렇게 낭설이 많다. 왜 그런지 묻거나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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