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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의 책 한 끼]당인리ㆍ원효로ㆍ종로…'목월'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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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숭원 교수의 박목월 시 75편 평설
1948년 고향 경주 떠나 서울생활 시작
홍익대 출강하며 '당인리 근처' 완성
중년의 생활인, 고결한 감수성으로 풀어내
"오늘 쓸 작품이 내 대표작" 꼿꼿한 자존심
끝없는 자기 갱신…도전하는 시인으로 남아


[김효진의 책 한 끼]당인리ㆍ원효로ㆍ종로…'목월'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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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수동 제비다방에서 이리카페, 탐라식당으로 이어지는 뒷골목은 홍익대 상권의 숨구멍 같다. 탐라식당에서 몸국에 한라산을 들이붓다가 담배 한 대 피우러 나와 올려다보는 골프연습장의 거무튀튀한 그물벽은 이정표다. 이걸 끼고 돌면 몇 걸음 안 가 한강변 서울복합화력발전소(당인동)가 나온다.


사람들은 여전히 '당인리발전소'라고 부른다. 당인동은 원래 경기도 당인리였다. 발전소는 경성전기주식회사가 1929년에 착공해서 이듬해 완공했다. 상수동 돌산에 올라선 홍대에서 바라볼 데라고는 발전소의 굴뚝뿐이지 않았을까. 시인 박목월(1915~1978)도 그랬던 듯하다.

그는 1956년 가을학기부터 2년 남짓 홍대에 전임강사로 출강했다. '전임' 자가 붙었지만 월급은 그냥 강사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가난했던 시인은 아직 국어국문학과가 안 생긴 홍대에서 '교양국어'를 강의했다. 국어 과목이었지만 주로 시 얘기를 했는데 명성이 높아서 다른 학교 청강생이 많기로 유명했단다. 그가 1959년 12월 '사상계'에 발표한 시 '당인리 근처'는, 그러니까 시인의 고결한 감수성과 생활인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당인리 변두리에 / 터를 마련할까 보아 / 나이는 들고… / 한 사오백 평(돈이 얼만데) / 집이야 움막인들 / 그야 그렇지. 집이 뭐 대순가 / 아쉬운 것은 흙 / 오곡이 여름하는 / 보리ㆍ수수ㆍ감자 / 때로는 몇 그루 꽃나무 <중략> 아냐. 진정으로 까치새끼 한 마리만 못하게 / 어이 떠날까 보냐 / 나이는 들고… / 아쉬운 것은 자연 / 그 품안에 쉴 / 한 사오백 평 / (돈이 얼만데) / 바라보는 당인리 근처를 / (자식들은 많고) / 잔잔한 것은 아지랑이인가(이 겨울에) / 나이는 들고"


시인이 '당인리 근처'를 언제 썼느냐고 '목월과의 만남'을 집필한 이숭원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에게 물었다. "박목월은 퇴고를 오래 하는 편이었어요. 발표는 1959년 말에 했지만 시를 쓴 건 홍대에 출강하던 1958년, 마흔 셋쯤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시인이 '당인리 근처'를 쓴 뒤로 반세기 하고도 십 년이 흘렀다. 발전소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에는 그 때의 흔적이 남아있을까. 저자는 이 시를 두고 "모든 것이 돈으로 좌우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눈앞을 가리는 아지랑이를 보며 점차 흰머리가 늘어가는 중년의 시인은 낭패감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고 적었다.


시인이 '생활'을 노래한 건 어쩌면 당연하다. '한정(閑庭)'이라는 시에서 그는 일과를 마치고 지친 이들을 "윤곽부터 풀리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김종삼이 훗날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걷고 "저녁녘 남대문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한 사람들이라고 짐작한다.


[김효진의 책 한 끼]당인리ㆍ원효로ㆍ종로…'목월'을 만나다



시인은 1948년 고향 경주에서 상경해 원효로 3가 전차 종점 근처에 있는 열두 평짜리 일본식 연립주택 2층에 터 잡았다. 1950년대 중반에 제주도로 '사랑의 도피'를 했다가 도로 올라와 효자동에서 자취한 몇 달을 빼면 그는 언제나 원효로에 살았다. 시인은 당인리 혹은 당인리 같은 어딘가를 그리워한 '원효로 시인'이다.


"어딜 가나 / 나는 원효로 행 버스를 기다린다 / 어디서나 나는 / 원효로 행 버스를 타고 돌아온다 / 릴케의 시구를 빌리면 / 깊은 밤 / 별이 찬란하게 빛나는 누리 안에서 / 고독한 공간으로 / 혼자 떨어져가는 / 그 땅덩이에서 / 나는 / 호구책을 마련하기 위하여 / 하루 종일 거리를 서성거렸고 / 때로는 / 사람을 방문하고 / 외로운 친구와 더불어 / 잔을 나누고 / 밤이 되면 / 어디서나 나는 / 원효로행 버스를 기다린다<하략>('회귀심')"


우리는 어째서 '박목월' 하면 '강나루 건너 밀밭 길을' 정도만을 떠올리는가. 시인의 백 분의 일, 천 분의 일도 안 될 텐데. 학력고사나 수능에 나온다면 이런 게 나올 거니까 '나그네'에 밑줄 긋고 '체념과 달관의 경지에 이른 서정적 자아'라고 적은 다음 달달 외우고 그만 넘어가서 그렇겠지. '수학의정석'처럼 문학을 학습했다.


저자는 "(시인의) 후기 시들은 초기작보다 훨씬 훌륭한데 그는 늘 '나그네'나 '청노루'의 시인으로 인식되었다"면서 "박목월만큼 지속적으로 자기 세계를 갱신해 가고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보여준 시인은 그의 세대에 드물다"고 지적했다. 제자뻘 시인이 묻는다. "선생님의 작품 중 대표작은 뭡니까?" 시인은 이렇게 답했다. "오늘 가서 쓸 작품이 내 대표작이 될 거야." 시인은 예순 셋에 죽었다. 60대 초반에 떠나서 안타깝지만 "시적 긴장"을 유지한 채여서 의미가 남다르다.


저자는 지금까지 정지용ㆍ백석ㆍ김영랑ㆍ서정주ㆍ김종삼의 시를 검토했다. 저자는 "한 시인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일은 이번 책으로 끝내려 한다"고 털어놨다. '목월과의 만남'에서 저자는 시인의 작품 일흔다섯 편을 골라 평설했다. 4년 전 서정주의 작품은 여든 편을 평설했으니 다섯 편이 적다.


"서정주보다 수가 적은 것은 두 시인이 남긴 작품 양의 차이에도 원인이 있고 내 근력의 감소에도 원인이 있다…(예전에는) 발표 출처의 원문을 일일이 찾아 대조하는 작업을 했는데, 이번에는 그것을 이행하지 못하고 이남호 교수가 편찬한 '박목월 시전집'에 많이 의존한 점이 못내 아쉽다. 시력의 약화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시가 열어주는 감성의 문을 통해 시인의 마음에 다가가려 한 나의 태도는 전과 다름없이 유지되었다."


저자의 평설을 읽으면 자연이 다듬어서 작아지고 부드러워진 돌멩이를 매만지는 느낌이 든다. 누가 언제 움켜잡아도 껄끄럽지 않다. 저자는 자기가 가진 시인의 사진 몇 장을 손수 골라 기자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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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의 책 한 끼]당인리ㆍ원효로ㆍ종로…'목월'을 만나다



목월과의 만남 / 이숭원 지음 / 역락 / 2만4000원




중기벤처부 기자 hjn2529@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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