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유니콘기업을 육성하려면 해외투자 규제를 완화하고 해외 진출을 독려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서울 역삼동 '마루180'에서 열린 토크콘서트 형식의 벤처정책 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기부는 이날 벤처 육성을 위한 혁신대책을 발표했다. 제2의 '벤처 붐'을 일구기 위해 벤처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는 내용이다.
현재 2개 뿐인 국내 유니콘기업을 2022년까지 8개로 늘리도록 하겠다는 구상도 대책에 담겼다. 유니콘기업은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설립한지 10년 이하인 비상장 스타트업을 가리킨다. 유니콘은 신화에 나오는, 이마에 뿔이 달린 말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크게 성공한 스타트업을 빗대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을 해 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에어비앤비, 우버 같은 기업이 대표적이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츠 등에 따르면 현재 세계 유니콘기업은 220개 안팎이다. 이들 기업의 가치는 약 800조원으로 추산된다. 절반인 100여개는 미국에 있다. 중국, 인도, 영국, 독일 등이 뒤를 잇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커머스 쿠팡, 모바일 플랫폼 기업 옐로모바일 정도가 유니콘기업으로 분류된다. 국내총생산(GDP)이 우리의 4분의1 수준이고 인구가 850만명에 불과한 이스라엘은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와 같은 2개의 유니콘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주목할 건 추세다. 이스라엘은 최근 들어 해마다 유니콘기업을 배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스타트업 모빌아이가 인텔에 인수됐다. 150억달러(약 16조원) 규모였다. 이스라엘은 창업국가로 유명하다. 국민 1인당 창업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스라엘의 대표 대학인 텔아비브대는 유니콘기업이나 기업인을 많이 배출하기로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
우리나라는 최근 5년 간 벤처 육성에 약 5조원을 투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앞서 있는 유니콘기업 선도 국가들을 따라가거나 이스라엘처럼 떠오르는 국가들을 물리치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업계의 지적이다.
홍 장관과 토론한 벤처 관계자들의 지적에 이런 고민이 녹아있다. 액셀러레이터(창업기획사)인 매쉬업엔젤스의 이택경 대표는 "내수 시장에서 유니콘 기업이 많이 나오는 것은 한계가 있고, 글로벌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벤처캐피탈인 소프트뱅크벤처스 문규학 대표는 "(해외 투자가) 국부 유출이라는 80∼90년대식 생각을 버리고 '글로벌라이제이션'이 문화가 돼야 한다"고 충고했다. 퓨처플레이 류중희 대표는 "오늘 발표된 정책은 빙산의 일각"이라면서 "추가 정책이 지속해서 나와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사행성 업종 등을 제외한 전 업종에 벤처투자를 허용하고, 벤처캐피털의 해외 투자 제한 규정을 없애기로 했다. 아울러 벤처캐피털 업체가 다른 개인ㆍ벤처펀드에 출자자(LP)로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수많은 도전자의 발목을 잡은 벤처기업확인제도 역시 손보기로 했다.
문제는 법 개정과 여기에 필요한 시간이다. 류 대표는 대책의 실행이 내년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스타트업의 1년은 보통의 업계 시간으로 10년"이라고 말했다. 홍 장관은 여야를 떠나 국회가 협조해줄 것을 촉구하며 "엽계에 계시는 분들이 조금 더 목소리를 내달라"고 부탁했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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