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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새해 첫날 북한산에서 해맞이를 하다

시계아이콘01분 59초 소요

[살며 생각하며] 새해 첫날 북한산에서 해맞이를 하다 원철 스님 조계종 포교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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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뀐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신년이 주는 새로움은 간 곳이 없고 무덤덤한 일상의 연속이다. 새해 첫날 큰맘 먹고 북한산에 올랐던 그날을 되돌아보며 스스로를 향한 다짐을 다시금 되새긴다.


지난 1일 새벽 해맞이 산행을 위해 4시30분에 자명종을 맞췄다. 따르릉 소리에 잠을 깼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다. 꿈과 현실이 둘이 아니라더니 꿈속에서 알람 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렇게 설렐 일도, 설렐 나이도 아닌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다시 잠을 청했다. 이번에는 전화벨이 울린다. 같이 오르기로 한 일행의 연락이었다. 세수를 하고 옷을 주섬주섬 챙기니 그제서야 숙소의 자명종이 울린다.

밖은 깜깜했지만 춥지 않았고 날씨는 맑은지라 별빛이 초롱초롱하다. 북한산 구기동 입구에는 일출 산행팀 수십명을 세워놓고 안내판 앞에서 유경험자가 열심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미 잘 아는 길이라 그냥 지나갔다. 얼마 후 등산화가 군화같은 저벅 걸음 소리를 내며 불빛의 행렬과 함께 뒤따라온다. 뒷팀을 의식한 채 발걸음을 빨리 했더니 금새 지친다. 겨우내 웅크리고 지낸 까닭에 운동부족 탓이리라. 코끝에서 느껴지는 냉기도 만만찮다. 할 수없이 차가운 바위에 기댄 채 휴식을 취했다. 뒷팀이 지나간다. 추월 당한 것이다. 기운을 차린 뒤 쉬엄쉬엄 따라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앞팀의 낙오자가 한두 명 보인다. 금방 앞팀 후미가 나타났다. 경쟁적으로 빨리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꾸준히 걷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선후를 다투지 말고 각자 자기 능력에 맞춰 자기 길을 걸어가면 될 일이다.


눈이 쌓인 곳은 음지길이고 녹은 곳은 양명한 곳이다. 서쪽 달이 보이면 등성이 길이고 별만 보이면 골짜기 길이다. 손전등이 비추는 한평 불빛에 의지한 길이지만 올라갈수록 뒤돌아보는 서울 시가지의 불빛 면적은 기하급수적으로 넓어진다. 서산에 걸린 새해 첫 달을 만났다. 카메라로 겨우 잡고보니 화면상으로 일출인지 월몰인지 구별이 불가능하다. 올해는 1월1일이 음력 11월15일인지라 보름달을 전송하는 기쁨을 덤으로 누렸다. 이제부터 온통 눈밭이 펼쳐진다. 여기가 빙점인 모양이다. 이내 옅은 아침 안개 속에서 남문이 성벽과 함께 떡하니 버티고 서있다. 다 왔구나!

문수봉에서 해맞이를 했다. 예전에는 첫 일출을 향해 두손을 공손하게 모으고 한해의 소원을 빌었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일출을 찍으려고 두 손을 바닷게 두 발가락처럼 모은다. 핸드폰의 대중화가 일출 풍속까지 변화시킨 것이다. 일출도 찍었지만 일출산행객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기도하는 새로운 모습도 함께 찍었다. 합장은 합장인데 두 손바닥이 닿는 것이 아니라 양손의 두 손가락을 스마트폰이 이어주고 있다. 태양신 혹은 일광(日光)보살을 찬탄하는 방식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인가 보다. 너 나 할 것 없이 덕담과 함께 일출 사진을 보내며 새해 인사에 바쁘다.


가상과 실상이 구별되지 않는 시대라고 한다. 집에 누워 TV를 통해 전국의 일출 풍광을 모두 볼 수 있는 쉬운 방법도 있다. 그럼에도 가상은 가상일 뿐이다. 나만의 실상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산에 오른 것이다. 실상을 보려면 노고와 땀이 수반돼야 한다. 하지만 그 실상을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선 가상을 빌려야 한다. 실상은 ‘내것’이지만 공유하면 가상이 된다. 또 실상은 순간포착 후 사라지지만 가상은 영원히 보관할 수 있다. 각각 장단점이 있는 법이다. 어쨌거나 나를 통해 실상과 가상이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욱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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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문수사 법당으로 갔다. 고개를 숙이며 새해 소원을 기원한 뒤 부엌방으로 가서 떡국을 먹었다. 일출 순례객을 위해 떡국을 끓이는 자원봉사자 10여명과 함께 새해 인사를 나눴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먹는 떡국이다. 누구는 나이 먹기 싫어 떡국이 아니라 만둣국을 먹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여긴 일반식당이 아닌지라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긴 만둣국을 먹는다고 나이를 피해갈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절집의 옛 시인은 해와 달이 함께 뜨고 지는 날을 이렇게 노래했다. '일월재수미산요(日月在須彌山腰) - 해와 달이 수미산 허리에 걸려 있도다.'


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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