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국정원은 진정 양지를 지향했나](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17112909355139434_1511915750.jpg)
'우리는 음지(陰地)에서 일하고 양지(陽地)를 지향(指向)한다.'
국가정보원의 모태인 중앙정보부가 37년동안 간직했던 부훈이다. 1961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본따 만들어진 중앙정보부는 이후 국가안전기획부 시절까지 이 부훈을 사용했다. '언제나 국가와 국민의 안위와 국익을 위해 일하면서 그 활동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헌신하는 정보요원상을 나타낸다'는 게 이 부훈에 대한 국정원의 설명이다.
안기부가 국정원으로 개명한 1999년 이후에는 세 차례나 원훈이 바뀌었다. '정보는 국력이다'(1999~2008),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無名)의 헌신'(2008~2016)을 거쳐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의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2016~현재)까지. 원훈은 모두 국가 안보와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위해 비밀스럽고 은밀한 과업수행을 정보요원의 행동수칙과 신념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음지에서 이름도 소리도 없이 헌신한다던 국정원이 요즘 뭇매를 맞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에 특수활동비 40억원을 상납한 혐의로 남재준ㆍ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구속됐다. 또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과 공무원은 물론 민간인까지 불법사찰한 혐의로 추명호 전 국익정보국장이 구속기소됐고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도 최근 검찰 조사를 받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연장선상에서 국정원의 국기문란, 비위 행위에 대한 조사는 현재진행형이다. 나아가 이명박 정부 시절의 댓글 사건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원세훈 전 원장은 광범위한 정치개입 의혹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다시 검찰에 불려나왔다.
국정원의 수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영원히 실종된 김형욱, 유신의 심장에 총을 겨눈 김재규를 비롯한 남산의 부장들은 이미 역사가 됐다. 문민시대에 들어서도 '북풍'으로 대선에 개입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권영해, 정치인과 기업인 불법 도청사건으로 구속된 임동원·신건, 남북정상회담 기밀 누설로 검찰 수사를 받은 김만복 등 내곡동 원장들도 줄줄이 불명예를 안았다.
최근 정보기관 수장의 굴욕은 국가에 충성하지 않고 권력자 한 사람에 충성한 것이 그 원인이다. 권력자를 곧 국가로 동일시한 것인데, 국가가 아닌 한 개인에 대한 충성을 애국으로 오판한 사태가 반복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정원은 또 다시 변신을 요구받고 있다. 최근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는 명칭 변경과 함께 수사권 이관, 직무 범위 명확화·구체화, 내외부 통제 강화, 예산집행의 투명성 제고 등을 포함한 국정원법 개정안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정원 개혁은 간판을 바꿔 달고 관련법을 바꾸는 것으로 그칠 일은 아니다. 정보기관의 역할과 책임(R&R)을 명확히 하고 무엇보다 국내 정치 개입을 원천 차단할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정원 내부의 자기쇄신이 먼저다. 정보기관을 수족으로 삼는 권력자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정치인 출신을 정보기관의 수장으로 앉히는 일도 그만둬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불운한 역사를 반복할 수야 없지 않은가. 그래서 최근 이종찬 전 국정원장의 언론 인터뷰는 곱씹어 볼 만하다. "'다시는 정권의 노예가 되지 말자, 누구의 사물화가 되지 말자'고 다짐하는 마지막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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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국정원 스스로 진정 음지에서 행한 일들이 양지를 지향하는 일인지 되물을 때다. 모쪼록 진정한 개혁으로 정보기관이 국가 안보ㆍ수호가 아니라 정권 유지의 도구로 전락하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기대한다.
김동선 디지털뉴스부장 matthew@asiae.co.kr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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