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의무 복무를 주장하는 청원에 10만 명 이상이 동참하면서 '여성징병제'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달 30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는 "남성만의 실질적 독박 국방의무 이행에서 벗어나 여성도 의무 이행에 동참하도록 법률개정이 돼야 한다"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 병역자원이 크게 부족해졌다"며 "현역 및 예비역에 대한 보상 또한 없다시피 하다. 여성들도 남성과 같이 일반병으로 의무복무하고 의무를 이행한 국민이라면 남녀 차별 없이 동일하게 혜택을 주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이 청원은 하루 만에 '베스트 청원'에 오르면서 4일 오후 6시께 청원 인원 10만 명을 돌파했다. 청원에 달린 댓글에는 여성징병제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징병제가 논의되기 시작한 건 2000년 무렵이다. 1999년 헌법재판소가 군 가산점제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군 복무자에 대한 보상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후 남성들을 중심으로 여성도 의무 복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남성만 징집 대상이 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헌법 제39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방의 의무는 남성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헌재 판례에 따르면 국방의 의무는 병역법에 의해 군복무에 임하는 등 직접적 병력형성의무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간접적인 병력형성의무 및 병력형성 이후 군작전 명령에 복종하고 협력해야 할 의무도 포함한다.
다만 여성의 경우 병역의 의무에서 제외된다는 것도 법에 명시돼 있다. 병역법 3조 1항은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돼 있다. 반면 '여성은 지원에 의해 현역 및 예비역으로만 복무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한 병역법 3조 1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례도 세 차례 있었다. 그러나 헌재는 이에 대해 번번이 합헌 결정을 내렸다. 2010년 11월과 2011년 6월 합헌 결정을 내린 데 이어 2014년 3월에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이 합헌 판결을 내렸다.
당시 헌재는 "남성이 전투에 더 적합한 신체적 능력을 갖추고 있고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여성도 생리적 특성이나 임신과 출산 등으로 훈련과 전투 관련 업무에 장애가 있을 수 있다"며 "최적의 전투력 확보를 위해 남성만의 병역의무자로 정한 것이 자의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 "남성 중심으로 짜인 현재의 군 조직에서 여성에게 병역 의무를 부과하면 상명하복과 권력관계를 이용한 성희롱 등 범죄나 기강해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여성징병제를 도입한 나라는 10여개국 정도다. 대부분은 내전이 잦은 국가들로 군 인력이 부족한 곳이 많다. 이스라엘은 주변국과의 충돌로 인해 모든 국민이 군대에 가야 한다. 1948년 건국 당시부터 여성을 비전투병으로 징집했다. 18~29세 남성, 20세 이전에 이민 온 18~26세 독신 여성에게 병역 의무가 주어진다. 다만 20세 이후에 이민 온 독신 여성의 경우에는 자원입대가 허용된다. 복무 기간은 남성 36개월, 여성 21개월로 차이가 있다.
북한은 2015년부터 여성징병제를 도입해 키 142㎝ 이상 여성들에게 7년의 의무 복무를 부과한다. 한편 남성은 병과에 따라 10~13년을 복무하도록 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으로는 처음으로 2016년 7월 여성 징병제를 도입했다.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1년간 의무 복무를 하게 된다. 그러나 매년 징집 대상자 6만 명 중에 실제 군이 필요로 하는 병력은 1만 명 정도다. 따라서 여성에게 강제성 있는 징집을 하는 것은 아니다. 노르웨이에서는 남성도 학업이나 건강, 종교적 신념 등 다양한 사유로 어렵지 않게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다.
한편 내년부터는 네덜란드와 스웨덴에서도 여성징병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네덜란드는 나토 회원국 중 노르웨이에 이어 두 번째로 여성징병제를 실시하는 국가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는 17세 이상의 여성도 징병 대상이 된다.
스웨덴은 2010년에 폐지한 징병제를 내년 1월부터 부활하면서 여성을 징병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이는 러시아가 크림반도 합병에 이어 발칸반도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자 안보 우려가 커지면서 나온 조치다. 징집 대상은 18세 청년으로, 매년 9~12개월간 복무하게 된다.
이외에 모잠비크, 수단 등 6개 아프리카 국가와 남미의 쿠바와 볼리비아가 여성징병제를 도입하고 있다.
디지털뉴스본부 김경은 기자 sil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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