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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열의 體讀]합종연횡의 20세기, 파시즘은 불안을 먹고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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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데올로기는 해방을 약속
자유주의·공산주의·보수주의 등 반작용·결합
시대따라 상호 관계 맺으며 현대사 완성
21세기에도 다양한 형태로 생명력 유지


미국의 지배력 강화·냉전체제 확산 등
가장 큰 영향 끼친 인물은 히틀러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영국 브루넬대에서 정치사상을 가르치는 마크 네오클레우스는 파시즘에 대해 "근대 산업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라고 했다. 인간 이성의 발현을 특징으로 하는 근대와 자본의 이익추구를 우선시하는 자본주의의 본질 속에 내재돼 있는 부정적인 잠재력이 만들어냈다고 본 것이다.


그가 파시즘에 관한 책을 쓰면서 맨 앞에 나치 독일의 선전상 요제프 괴벨스의 말을 언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1923년 나치가 정권을 장악했을 때 괴벨스는 "이제부터 1789년은 역사에서 삭제된다"고 했다. 파시즘이 프랑스혁명으로 구현된 계몽의 가치에 대한 반작용이었단 얘기다.

최근 국내에 출간된 '20세기 이데올로기'를 쓴 스코틀랜드 출신 역사학자 윌리 톰슨의 시각도 비슷하다. 20세기 역사의 어느 순간에 파시즘이 전 세계 곳곳에서 아주 극명한 형태로 모습을 보인 적이 있지만 명확한 정의는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그는 파시즘을 "위기, 즉 전쟁과 부차적 사회혼란 그리고 경제붕괴 및 문화적 불안이라는 위기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했다.


파시즘을 개념적으로 정의하거나 최소조건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전제하면서도 20세기 초반 각국의 정치지형과 파시즘 운동의 구성원, 겉으로 드러나는 양상, 여타 이데올로기와의 비교 등을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윌리 톰슨의 책은 파시즘을 비롯해 자유주의, 보수주의, 공산주의 등을 함께 다루고 있다. 1914년부터 1945년을 대참사의 시대, 1945년부터 1973년을 황금시대, 1973년부터 1991년까지를 위기의 시대로 구분해 각 시대별로 각각의 이데올로기가 주요 국가나 정권에서 어떻게 드러났는지, 혹은 어떻게 합종연횡 과정을 거쳤는지를 보여준다. 우리사회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아울러 여전히 끼치고 있는) 민족주의는 따로 다루지 않는다. 저자는 민족주의를 간과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면서도 "그것이 다른 모든 이데올로기에 스며들어 있으며 그러한 탓에 계속 언급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책의 원제는 이집트 출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시대 시리즈 가운데 마지막, '극단의 시대'를 그대로 가져왔다. 1914년부터 1991년까지를 다루고 있는 것도 같다. 20세기를 그대로 겪고 목도한 홉스봄은 2차 대전이 끝나는 시점을 전후로 파국과 황금의 시대로 구분한다. 홉스봄과 마찬가지로 영국 공산당에서 활동하기도 한 톰슨은 공산당역사가그룹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사회주의역사학회를 창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최대열의 體讀]합종연횡의 20세기, 파시즘은 불안을 먹고 자랐다 20세기 이데올로기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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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나 보수주의, 공산주의, 파시즘 모두 20세기 이전부터 적지 않은 잉태기간을 거치며 우리 곁에 존재했다.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데스튀 드 트라시가 이데올로기라는 말을 처음 쓸 때만 해도 관념(idea)에 대한 학문 정도의 의미였으나 이후 여러 함의가 덧붙여졌다.


"특정한 사회ㆍ문화집단에 적용할 수 있는 근본적인 신념의 상호연관체계"라는 중립적인 정의가 가능한 동시에 누구나 받아들이는 상식으로 볼 수도, 혹은 정치적 추진력과 관련된 권력에의 의지와 결부시켜 볼 수도 있다. 저자 역시 각 이데올로기의 지적토대를 살펴보면서도 각 시대상황과 연관시켜 실제 사람의 삶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책을 톺으면서 넷 중 하나인 파시즘에 유독 집중한 건 우리 사회가 처한 여건 때문이다. 군부정권 시절 폭력적인 국가권력을 빗댄 '파쇼'라는 표현이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횟수는 확연히 줄었지만, 파시즘은 과거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특수한 탈선의 상황으로 볼 수만은 없다고 나는 본다. 1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일어날 상황이 보여주듯, 파시즘이란 이념은 일정한 원리와 신념을 기반으로 하기보다는 가변적이고 필요에 따라 다른 이데올로기와 결합과 변형이 쉽기 때문이다.


이는 파시즘만의 특징이 아니다. 다른 이데올로기 역시 부침을 겪으면서 서로 붙었다 떨어졌다, 그리고 변형이 빈번하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위기에 몰린 자유주의는 보수주의와 결합하며 신자유주의로 거듭났다. 생존자로 남은 신자유주의 역시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 역시 21세기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20세기 말미 외환위기 이후 불안정한 상황이 안정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우리나라도 신자유주의가 휘젓고 다닌 곳 중 하나다. 불안을 먹고 사는 파시즘이 구현될 여건이 갖춰져 있다는 뜻이다.


물론 저자가 지적하듯 전후 파시스트라는 이름이 들어간 단체는 한곳도 없다. 그러나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는 이민자에 대한 반감과 편견이 단적으로 보여주듯이 파시즘은 언제나 생명력을 유지해왔으며 시시때때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저자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모든 이데올로기는 해방을 약속한다. 파시즘이 다른 이데올로기와 다른 게 있다면 해방의 과정에서 다소 거친 수단을 동원한다는 점이다.


저자가 20세기를 비롯해 오늘날까지 가장 큰 충격과 영향을 끼친 인물로 아돌프 히틀러를 꼽은 점도 눈에 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미국의 국제경제에 대한 지배력이 높아진 점은 물론 20세기 중반 이후 냉전체제가 남긴 유산, 나아가 아프리카나 중동, 아시아 전역에까지 히틀러가 일으킨 전쟁의 결과에 따라 근본적으로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다. 톰슨은 "죽은 파시즘이 산 파시즘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 사실로 입증됐다는 생각도 지나친 과장만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자유주의의 승리로 역사가 끝났다는 한 정치철학자의 단언이 도리어 이데올로기 논쟁에 불을 붙였듯,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관념체계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따지고 살펴보는 일은 소수 학자들만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나는 본다. 분단은 한반도에 터를 둔 모든 이의 현실이며, 자본과 계급은 당장 먹고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책이 다루는 주제가 묵직한 반면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설명이 간략한 부분은 감안해서 읽어야 한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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