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슨과 벌인 '전류 전쟁'의 승자는
전기차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테슬라'다. 전기차의 대중화를 선도하고 있는 이 회사의 명칭은 100년 전 활동했던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의 이름에서 따왔다. 니콜라 테슬라가 개발한 교류 유도 모터로 스포츠카를 만들겠다는 것이 테슬라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첨단 전기차의 바탕이 된 교류 유도 모터가 처음부터 그 성능을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니콜라 테슬라는 그 과정에서 전기의 아버지로 불리는 토머스 에디슨과 전쟁을 치러야 했다.
테슬라의 사연은 이렇다. 1856년 세르비아 스미즈란 지역(오늘날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난 테슬라는 그라츠 공과대학에 다니면서 직류 대신 교류로 작동하는 모터를 구상했다고 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파리에 있는 에디슨의 회사에서 일하며 이를 처음 만들었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테슬라는 미국으로 건너가 에디슨의 연구소에서 일하게 됐다. 하지만 테슬라와 에디슨의 사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에디슨이 테슬라의 성과를 도용하고 성공 보수를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교류에 대한 입장 차이였다. 에디슨은 직류를 신봉했지만 테슬라는 자신의 교류 모터가 직류 시스템보다 뛰어나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테슬라는 에디슨과 결별했고 1893년 그 유명한 '전류 전쟁(War of Currents)'이 벌어진다. 테슬라는 조지 웨스팅하우스에 특허권을 팔고 웨스팅하우스와 에디슨이 미국의 전류 공급 방식을 두고 경쟁을 벌였다. 결과는 시카고 세계 박람회를 밝힐 전기로 교류가 채택되면서 전류 전쟁은 테슬라의 승리로 끝났다. 나이아가라 폭포에 세워진 세계 최초의 수력발전소에도 교류 시스템이 적용된다.
하지만 테슬라는 전류 전쟁에서는 에디슨을 이겼지만 비즈니스에서는 에디슨과 비교할 수 없었다. 에디슨은 제너럴일렉트로닉(GE)을 창업하는 등 사업에서도 성공을 거뒀지만 테슬라는 특허를 공유하려 했고 연구비 때문에 죽을 때까지 빚에 시달렸다. 전기차 회사 테슬라 역시 그의 이름을 따왔을 뿐 그와 아무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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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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