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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서의 On Stage]식민시대 이겨낸 민초들의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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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재상연된 '뮤지컬 아리랑'

일제강점기 이념 대립·여성성 재조명
역사의식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경종
경사무대로 배우 표정·움직임 더 생생


[장인서의 On Stage]식민시대 이겨낸 민초들의 아리랑 뮤지컬 '아리랑'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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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한국민요 아리랑. 귀에 익숙한 노랫말이 무대와 객석을 메우는 순간 배우와 관객이 느끼는 '한(恨)'도 절정에 이른다. 비극보다 처절하고 수난이라기엔 더없이 치욕스러웠던 지난한 역사가 2시간40분 동안 펼쳐졌다. 강인한 생명력. 민초들이 남긴 정신적 유산은 하나가 된 울림을 통해 세대를 넘고 넘어 전해질 것임을 짐작케 했다. 2년 만에 상연되는 뮤지컬 '아리랑(연출 고선웅)' 이야기다.


아리랑은 조정래(74)의 동명 대하소설을 뮤지컬화한 작품이다.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처음 선보였고 초연 기간 총 4만여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며 호평받았다. 올해는 안재욱ㆍ서범석ㆍ김우형ㆍ윤공주 등 초연무대에 섰던 배우 서른한 명이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여기에 윤형렬ㆍ박지연ㆍ장은아, 소리꾼 이승희 등 열한 명이 새로 합류했다. 배우들은 "한국인이기 때문에 운명처럼 이끌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뮤지컬은 일제강점기, 파란의 시대를 살아낸 민초들의 삶과 사랑, 투쟁의 역사를 밀도 있는 무대세트와 아름다운 음악으로 풀어낸다. 조정래는 제작노트에서 "식민지는 민족 전체가 노예로 짓밟히고, 착취당하고 살해당하는 극한상황이다. 그런 처절한 굴욕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소설 아리랑은 쓰였다"고 했다. 또한 그는 "우리나라 젊은 세대의 역사의식은 점점 더 우려할 상태가 돼간다"면서 "뮤지컬 아리랑은 이런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


[장인서의 On Stage]식민시대 이겨낸 민초들의 아리랑 송수익(안재욱)과 독립군의 무장투쟁 장면.


극은 감골댁 가족사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김제군 죽산면에 사는 감골댁의 아들 방영근은 빚 20원에 하와이에 역부로 팔려 간다. 양반 송수익의 몸종이었던 양치성은 스승인 그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살아온 인물이다. 그러던 중 자신의 아버지가 의병에게 살해되자 일본 첩보원 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온다. 그사이 수익은 만주로 가서 독립군을 이끈다. 일본의 앞잡이가 된 치성은 수익의 행방을 추적하는 한편 농간을 벌여 감골댁을 비참하게 죽게 한다.


비극은 딸들에게도 힘을 뻗치고 있었다. 미선소에서 일을 하던 감골댁의 딸 방수국은 감독관에게 유린당한다. 수국과 사랑하는 사이였던 득보는 이에 분노해 주먹을 휘두르다 감옥에 갇힌다. 득보의 동생이자 수국의 친구 차옥비는 오빠를 구하기 위해 감찰국장 고마다의 첩이 된다. 또한 친일파가 된 치성은 평소 연정을 품었던 수국을 협박해 강제로 동거하고, 수국은 그의 아이를 갖게 된다.


주요인물이 마주한 운명은 민족이 겪은 가혹한 수난사를 압축해 보여준다. 수익과 치성의 대립에서 이념의 격동기를, 수옥과 옥비의 고통에서 시대의 무력에 짓밟힌 여성성을 본다. 재앙에 가까운 고난이 지나간 뒤 살아남은 이들은 꿋꿋하게 땅을 딛고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슬픈 노랫가락. 풀꽃처럼 부드러운 강인함이 그 안에서 움트고 있다. "지치지 말아야제. 끝까지 살아서 견디고 이겨야 혀."


[장인서의 On Stage]식민시대 이겨낸 민초들의 아리랑 하와이 이주를 떠나는 영근(박시범·오른쪽)과 아들을 보내는 감골댁(김성녀)의 모습.


감골댁 역을 맡은 배우 김성녀의 열연도 돋보인다. 풍부한 성량과 호소력 짙은 연기로 인정받는 그는 작품 전체를 이끄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감골댁은 모성의 강인함을, 딸 수국은 악에 맞서는 인간의 강인함을 드러내며 보통 여인들이 일군 승리의 역사를 보여준다. 수국 역의 박지연은 "뮤지컬 아리랑은 그 시대를 살아낸 여성에 관해 이야기한다"면서 "기다리고 인내하고 빼앗기고 당하지만 그래도 또 참고 이겨내고 견디고 싸우고 잉태하는 여인의 삶"이라고 설명했다.


열두 권이나 되는 원작소설을 각색하다 보니 생략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1막과 2막 시작에서 전체 줄거리를 보여주기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오히려 뮤지컬로 압축하면서 줄거리에 대한 이해와 극의 몰입도를 높이는 효과를 얻었다. 40여년의 세월이 빚어낸 거대한 드라마는 공간을 꽉 채운 경사무대로 치환됐다.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무대는 배우들의 표정과 움직임을 더 생생하게 드러냈다. 또한 상황과 인물의 감정을 은유적으로 재해석한 상징 이미지를 프로젝터와 리어스크린(후면투사), 홀로그래픽 스크린 등을 통해 서정적이거나 강렬하게 전달한다.


[장인서의 On Stage]식민시대 이겨낸 민초들의 아리랑 뮤지컬 '아리랑'의 한 장면.


아리랑을 포함한 50여곡의 넘버(노래)는 21인조 오케스트라 선율로 '한'과 '흥'을 적절히 배합해낸다. '진달래와 아리랑' '꽃이여' '찬바람~풀이 눕는다' '아의 아리아' '어미와 딸' '풀꽃아리랑'이 대표곡이다. 진도아리랑과 신아리랑 등의 판소리와 현대음악이 어우러지는 장면도 압권이다. 한국어와 일본어 대사, 한국과 일본의 전통의상이 펼치는 앙상블도 지루할 새 없이 눈과 귀를 붙든다.


고선웅 연출은 지난 12일 공연 후 가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소설 아리랑은) 태산 같은 열두 권의 책이었다. 단 한 줄만 해도 뮤지컬 한 편을 만들 수 있을 정도였고, 뭐라고 형언할 수가 없었다.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지만, 선생님의 태산을 조금 떨어져서 보면서 제 심장에 있는 아리랑을 찾아 나갔다"고 털어놨다. 이어 "뮤지컬 아리랑이 역사 공부는 아니다. 공부는 책으로 배울 수 있다"면서 "나는 단지, 우리들의 심장이 그냥 보고 느끼게 할 뿐이다. 공연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아리랑을 반드시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9월3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장인서 기자 en130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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