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정책 강화로 공평한 경쟁
실업·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
여성 능력치 최대로 끌어 올릴 것
[인터뷰=이학인 아시아경제 사회부장] "여성인력 양성을 통해 사회적 파이를 키우는 것이 우리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전략입니다. 여성가족부는 10개의 파이 중에서 남성이 갖고 있던 7개를 가져오는 게 아니라 전체 파이를 12~13개로 키우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이나 신자유주의 시대에 실업과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여성인력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난 정현백 여가부 장관은 "여가부는 성평등을 통해 전체 사회적 파이를 키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평등 정책 강화로 공정한 경쟁을 통해 여성의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미다. 정부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20대 주요 국정 전략 중 하나로 '노동 존중·성평등을 포함한 차별 없는 공정사회'를 선정했다.
정 장관은 우선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로 경력단절을 꼽았다. 'M자 곡선'으로 표현되는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 여가부는 여성 일자리 문제 해결에 나섰다. M자 곡선은 국내 여성의 연령별 고용률을 나타내는 그래프로, 출산과 육아로 여성의 취업률이 떨어졌다가 다시 취업할 때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으로 취업하게 되는 상황을 나타낸다.
여가부는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을 돕는 새로일하기센터를 통해 양질의 여성 일자리를 늘릴 계획이다. 추가경정예산(추경)도 23억원 확보했다. 여가부는 재취업을 위한 여성들의 직업 훈련 프로그램을 50개로 더 확대하고 창업 전담인력 30명을 배치할 예정이다. 새일센터도 현재 150개에서 올해 말까지 5개를 추가 건립한다. 정 장관은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대졸 출신 여성들이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면서도 "더 중요한 것은 직장 눈치를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쓰고,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장관은 건강가정기본법을 가족기본법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처음 법이 제정될 당시 건강이라는 말 자체가 가치 개념이 들어가면서 법의 성격상 적절하지 않아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최근엔 가족의 형태 자체가 너무 많이 바뀌었다"며 "현재의 건가법으로는 변화한 가족의 형태를 담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에 따르면 가족의 정의는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 기본단위를 말한다. 건강가정은 가족 구성원의 욕구가 충족되고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가정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정 장관은 이 같은 한정적인 가족 개념은 현 시대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장관은 "1인 가구, 사실혼 가구, 동거 가구, 아동 위탁 가구 등 다양한 가구를 지원할 수 있는 맞춤 서비스 제공을 위해 법을 치밀하고 꼼꼼하게 개정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 장관은 "지난 10년 동안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100조원이 넘는 돈을 썼다고 하는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는 얘기가 똑같다"면서 "과거 예산 투입이 실제적인 액션 플랜에 쓰인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점검을 통해 실질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곳에 예산을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우선 아이를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도록 돌봄 영역에서 공공성도 확보할 계획이다. 여가부는 추경 확대를 통해 저소득층 아이돌봄서비스 시간을 연간 480시간에서 600시간으로 늘렸다. 정 장관은 "일본의 한 도시에서는 보육시설 전체 4층 건물 중 1층은 장애 아동, 2층은 일반 아동, 3층은 갑자기 급한 일이 있을 때 아이를 잠시 맡기는 곳으로 세분화돼 있다"고 예를 들며 "급한 일이 생겼을 때도 아이를 돌봄 서비스에 맡길 수 있는 일종의 맞춤 서비스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필요하다"고 말했다.
데이트 폭력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폭력 피해 문제와 관련해서는 법률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정 장관은 "젠더폭력방지법을 일단 만들어야 할 것 같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명예 훼손이나 성적 모욕을 당할 경우 법적 소송에 필요한 법률 지원을 무료로 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가부는 몰래카메라, 리벤지 포르노 등 디지털 기록이 유포된 피해자에게 상담과 유포 기록 삭제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정 장관은 "폭력이라는 것을 인식시켜주는 작업도 필요하다"며 "젠더 폭력은 법률적 지원을 통해 구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사업도 활발하게 추진할 방침이다. 정 장관은 "살아 계신 피해자분들이 몇 분 남지 않으셔서 기억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며 "서울에서 상징성이 있는 용산에 짓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박물관을 통해 역사 교육은 물론 자료들을 모아 정리해 후대에 전달하는 역할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민간단체 활동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와 일본을 포함한 9개국 15개 단체의 공동명의로 지난해 5월 등재 신청은 완료됐으며 오는 10월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정 장관은 "소녀상이나 유네스코 기록물 관련해서는 아래서부터 올라오는 시민들의 운동이기 때문에 그대로 추진하되 정부 차원에서 사회적 인프라를 깔아주는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여가부는 올해 하반기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어지는 '성평등위원회'를 통해 여가부의 집행력을 확대할 방침이다. 정 장관은 "여가부는 집행하는 부처로 젠더 정치의 방향성을 얘기하면 이를 토대로 위원회가 실질적으로 가동되도록 할 것"이라며 "각 부처의 정책이 얼마나 성별로 다른 영향을 끼치는가를 분석하는 성별영향평가 등을 통해 부처별 상황을 점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리=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사진=문호남 기자 munonam@asiae.co.kr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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