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동물가죽 위에 그려진 마흔다섯 점의 회화 작품을 지하 전시장 한 벽 전체에 걸었다. 맞은편에는 여우 목도리가 피리를 불고 있다. 죽은 동물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듯하다. 죽음과 환상이 결합해 극명한 대비효과를 낸다.
서울 아라리오갤러리는 13일부터 내달 27일까지 장종완 작가의 개인전 ‘오가닉 팜 (Organic Farm)’을 연다. 회화와 영상, 조각 등 총 40여 점을 마련했다.
장종완 작가는 우리가 상상하는 유토피아는 실재하지 않으며 이는 단지 환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장 작가는 “2009년부터 불안한 유토피아를 그렸다. 전 세계 유명한 풍경이나 동·식물들을 수집하고, 화면에 조합해 존재할 법한 이상향을 만들었다. 이것을 바탕으로 불안, 환상, 기원 세 가지 키워드로 제작했다. 맹목적인 믿음이나 환상적인 풍경을 주로 다룬다”고 했다.
전시 제목인 ‘오가닉 팜’은 오가닉의 중의적 의미를 차용했다. 장 작가는 “2년 전부터 아기를 키우고 있는데 요즘 뉴스에서 먹거리 불안, 환경오염 문제가 많이 부각된다. 비싼 유기농(organic) 제품을 구입하며, 위안과 안식을 얻으려는 사람들의 심리(맹신)을 연관 지어 보았다”고 했다.
인간은 시대에 따라 방향은 다르지만, 이상향에 대한 갈망과 맹신을 지속해왔다. 하지만 그만큼 끊임없이 좌절도 반복했다. 장 작가는 이러한 소망과 실망 사이에 유기적(organic)인 순환고리가 있다고 말한다.
작품은 색채를 띤 일러스트레이션과 털가죽 오브제를 결합한다. 작품을 자세히 뜯어보면 작가 특유의 전원적이면서도 냉소적인 시각을 느낄 수 있다. ‘그가 말하니 모두들 잠잠해졌다(2015)’ 작품은 사슴 가죽위에 사슴 농장 이미지를 그렸다. 관람객은 농장을 보며 유토피아를 떠올리지만, 이것의 바탕이 사슴 가죽임을 발견하곤 혼돈에 휩싸이게 된다. 전원과 동물 가죽은 모두 인간의 탐욕을 상징한다.
장 작가는 ‘죽음과 유토피아가 결합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 생각했다.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가죽을 수집하며 작업을 시작했다. 수집하는데 애를 먹긴 했지만, 서서히 숫자가 모여 원하던 콘셉트의 개인전을 치를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어릴 적부터 아버지는 이국적인 가죽 카펫, 또는 박제를 많이 수집하셨다. 시간이 지나 창고나 바닥에 뒹구는 것을 보며 이것을 작품화해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중국여행 때 티베트 미술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야크 가죽으로 그린 그림을 보니 매우 재미있었다. 기존 유토피아 이미지와 죽음이 결합하면서 오는 대비효과와 약간의 불편함이 흥미로웠다”고 했다.
김세영 기자 ksy123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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