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A(온순한 성향)'입니다. 지금부터는 A에서 'J(공격적 성향)'로 변합니다"
인천에서 8살 여자 초등학생을 유괴 및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A(17)양이 검찰서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 내용 중 일부다. 검찰은 이에 대해 "다중인격이면 A와 J가 서로 한 일을 몰라야 한다"며 "A양은 다중인격이 아니다"고 맞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양이 주장하는 다중인격은 '해리성 정체감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로 불리는 ‘다중 인격장애’다. 한 사람 안에 둘 이상의 각기 다른 정체감을 지닌 인격이 존재해 행동을 지배하는 증상을 말한다. 이 다중 인격장애는 정체감끼리 갈등을 빚기도 하고 활동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 갈등 관계를 해소하는 것이 이 질환 치료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알려졌다.
A양이 주장하고 있는 ‘다중 인격장애’는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23 아이덴티티’에서 주인공이 겪는 증상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해당 영화는 실제 ‘다중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는 빌리 밀리건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빌리 밀리건은 1955년에 태어나 5살이 되던 해 최초로 제 2인격인 '크리스틴'이 생겨났고, 이후 9살 즈음 양아버지로부터 성학대를 당하며 24개의 인격이 분산돼 나타나게 됐다고 알려졌다. 이후 여러 차례 여대생을 납치, 강도 및 성폭행을 저질러 체포됐는데, 해당 사건에서 재판부는 다중인격을 인정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당시 수사관들은 그가 가짜 연기를 펼친다고 의심했지만, 고등학교 중퇴 수준의 그가 ‘아서’라는 인격이 지배하면 아랍어와 아프리카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가 하면 수학, 물리학, 의학을 전문가 수준으로 보여줬다.
한편 우리 형법 제10조 제1항은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 한다”고 책임무능력을 규정하고 있다. A양이 주장하는 ‘다중 인격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한 능력이 없다고 입증이 되면 책임을 따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1974년 2월15일 광주고등법원은 피고인이 범행 당시에는 환시, 환청 등의 지시 망상으로 인한 정신병적 해리 상태에서 사물에 대한 시비선악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만성 정신분열증(조현병)에 있었던 사실이 인정된다고 하여 책임능력이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다시 말해 A양이 범죄행위 시점에 ‘다중 인격장애’가 발생했다고 입증이 되면 A양의 책임에 대해서 다퉈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A양의 심리를 분석한 대검 수사자문위원(심리학과 교수)은 "A양은 현실검증능력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고 고도로 치밀하다"며 "다중인격 주장은 필요에 따라 A양이 꾸몄을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의 결과 보고서를 검찰에 제출한 상태다. 또 검찰은 심리전문가의 분석을 근거로 A양이 ‘다중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배경에는 감형을 위한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아시아경제 티잼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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