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문재인 정부의 11조2000억원 추가경정예산을 두고서 여야 간 설전이 거세다. 자유한국당 등은 국가재정법의 추경 요건을 제시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 제출한 추경 예산안은 국가재정법상 법적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특히 추경 편성의 법적 요건에 대해서는 '엄격한 조건에는 안 맞는다'는 비판들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미 현행 국가재정법은 이전의 국가재정법에 비해 법적 요건이 대폭 완화된 법으로, 법률 개정 취지 등을 고려할 때 엄격한 법적 요건을 주장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행 국가재정법 89조는 추경 편성의 요건을 다루고 있다. 이에 따르면 추경 편성은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 경기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의 변화, 경제협력과 같은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법령에 따라 국가가 지급하여야 하는 지출이 발생하거나 증가하는 경우에 발행할 수 있다. 이처럼 구체적으로 추경 편성 요건을 명시한 것에 대해 재정전문가들은 "과다한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사전에 방지하고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시정연설을 통해 "국민의 고달픈 하루가 매일매일 계속되고 있다"면서 "누구나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 우리의 고용상황이 너무나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실업률은 2000년 이후 최고치, 실업자 수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면서 추경 편성의 절박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책위의장 등은 " 국가재정법이 정하고 있는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며 반대 입장을 내놨다. 이 때문에 더불어민주당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등 정부 부처의 설득 작업에 나서고 있다. 특히 문 대통령과 민주당 등은 "추경은 시간이 지나면 의미가 퇴색된다"며 연일 야당을 상대로 예산안 처리에 협조해줄 것을 호소했다. 문 대통령은 방미를 앞두고 열린 지난달 27일 국무회의에서 "해외로 떠나는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부담이 아니라 추경에 대한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이 가운데 이혜훈 바른정당 신임 대표의 추경에 대한 입장은 눈길을 끌었다. 이 대표는 "한국당이 일자리 추경에 대해 추경 요건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며 "(한국당은) 말할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한나라당 시절 박근혜 당시 당대표가 노무현정부의 잦은 추경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국가재정법 개정을 주도했다"면서 "정작 본인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4년 동안 3번, 거의 매년 총 40조원 규모의 추경을 시행했다 지적했다.
이 대표는 "당시 (이 대표 자신은) 새누리당 최고위원으로서 박근혜정부의 추경이 국가재정법 89조에 안 맞는다고 지속적으로 얘기했다"면서 "지금 문재인정부 추경이 요건에 안 맞는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박근혜정부 추경에는 요건이 된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추경 요건을 두고서 한국당 의원들의 태도가 집권여당일 때와 야당일 때 달라졌다는 것이다.
현행법이 추경에 대해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국가재정법 개정 과정을 보면 추경 편성 요건은 완화 흐름을 보인다는 것이다. 즉 엄격한 편성 요건이 완화되는 흐름을 보였던 그간의 법률 개정 변화를 고려할 때 맞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실제 2009년 2월 정부와 한나라당(현 한국당) 주도의 국가재정법 개정 법 조항을 살펴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법 개정 전에는 국가재정법 89조의 조문명은 '편성의 제한'이었지만 '편성'으로 수정됐다. 검토방식 또한 개정 전에는 '확정된 예산에 변경을 가할 필요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추가경정 예산안을 편성할 수 없다'였지만 법 개정 후 '확정된 예산에 변경을 가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추가경정 예산안을 편성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 포지티브 방식이 네가티브 방식으로 달라지면서 요건 검토방식 자체가 대폭 완화된 것이다. 이외에도 법 개정과정에서는 편성요건 대한 규정 역시 큰 폭으로 넓어졌다.
국회 관계자는 "2006년 국가재정법이 제정됐을 당시에는 추경 편성요건을 엄격히 제안했는데, 한나라당 주도로 2009년 법이 개정을 거치면서 추경 편성 요건은 대폭 완화됐다"면서 "당시 추경 편성을 좀 더 용이하게 만들기 위해 국가재정법을 만들었던 당시 집권세력이, 엄격한 추경 요건을 언급하는 것은 모순되는 행보"라고 지적했다. 이미 현재의 국가재정법은 이미 과거 2006년 제정 당시에 비해 편성 요건이 완화됐는데, 엄격한 적용 방식을 이야기하는 것은 법률 개정 정신의 취지에서 봤을 때 자가당착이라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출신의 재정전문가인 김정우 민주당 의원은 야당의 추경 반대를 두고 대선 불복이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SNS를 통해 "대선공약으로 이미 국민이 선택한 일자리 추경을 반대하는 것은 대선 불복"이라면서 "추경 논의에 응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강한 야당이 아닌 대안없이 발목을 잡는 야당"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일자리 추경은 미룰 수 없는 국민의 생존과 삶의 문제"라면서 "공무원과 사회서비스 인력 확충은 일자리를 넘어 더 나은 국민의 삶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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