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문제원 기자] 24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수천명의 시민들이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대사관을 둘러싼 가운데 "사드배치 결사반대"를 외쳤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참여연대 등 수십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사드한국배치전국행동(전국행동)'은 이날 오후 4시부터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사드 철회 범국민평화행동' 집회를 개최했다.
집회 시작 전 민중연합당과 진보대학생넷 등 소속 대학생 100여명은 '사드철거 대학생 결의대회'를 열고 사드 반대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황교안 전 국무총리,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한민구 국방부 장관,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사드5적'으로 규정하고,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광장에는 '사드 가고 평화오라', '사드는 한국의 북핵 방어용이 아닌 미국과 일본 방어용', '가장 강한 무기는 평화'라고 적힌 현수막과 손피켓이 다수 보였다.
경상남도 남해에서 올라온 박옥섭(51)씨는 "사드가 북한 핵이나 장거리 미사일 방어용 무기가 아니라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무기"라며 "중국은 사드를 명분으로 또 무기를 개발할 것이고 한반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라북도 전주에서 올라온 문승섭(54)씨는 "제대로 된 형식과 절차를 거치지 않고 '알박기' 형태로 사드를 들여온 것은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다음주 한미정상회담이 열린다. 촛불항쟁으로 만들어진 문재인 정권은 주권과 국민의 이익을 지켜주길 바란다"며 "소성리 할머니가 사드보다 더 중요하다고 당당하게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최측 추산 3000명의 시민들은 이날 오후 5시20분께부터 서울광장을 출발해 '세종대로 사거리→종각역 사거리 →우정국로(조계사 앞 사거리)→삼봉로→종로소방서'를 거쳐 주한 미 대사관까지 행진했다.
시민들은 종로소방서 인근에서 두개의 대오로 분리해 둥글게 미 대사관을 에워쌌다. 전국행동 주최측은 "역사상 처음으로 미 대사관 인간띠 잇기를 한다"며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일이기에 역사상 매우 중요한 날이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이날 차벽 대신 수천명의 경력과 폴리스라인으로 대사관을 둘러쌌다. 경찰과 집회 참여 시민들간 충돌은 없었다. 당초 경찰은 전국행동이 신고한 경로 중 미 대사관 뒷길은 금지 통고를 했지만, 법원이 23일 일부 인용하면서 행진이 성사됐다. 다만 행진 경로에 있는 종로소방서의 출동에 지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20분 이내 신속 통과'를 조건을 내걸었다.
시민들은 미 대사관을 에워싼 상태에서 함성을 지르며 파도타기를 하기도 했다. 이들은 "미국 사드 미국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규탄한다", "노 사드, 노 트럼프"를 외쳤다. 광화문광장을 지나던 시민들도 행렬을 지켜보며 사진을 찍거나 응원했다.
김주연(45)씨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드배치 반대를 외치며 미 대사관을 에워싸니 감회가 새롭다"며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사드배치가 철회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집회와 행렬을 지나던 일부 시민들은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드 자체의 필요성이 있고, 미국과의 외교관계도 고려해야 한다며 사드 배치를 무작정 반대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29ㆍ여)씨는 "사드 배치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대다수 국민들의 의견과 다른 것 같다"며 "무작정 반대할 것이 아니라 이제 배치됐으니 조금 경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미(69ㆍ여)씨는 "미국과는 오래된 동맹국인데 미국과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것은 안된다"며 "절차도 중요하지만 나라를 위한 일이라는 측면에서 사드배치를 찬성한다"고 말했다. 최모(45)씨는 "사드가 자주적인 무기가 아니라는 측면에서 자존심이 상하긴 하지만 북한과의 대치 상황에서 필요성은 있다고 본다"며 "미국과의 관계 등 외교적인 측면도 있기 때문에 반대만 할 것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