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도대체 누가 제보를 한거냐."
15일 오후 서울대학교병원 본관 회의실, 정신건강의학과(이하 정신과) 교수 2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하규섭 주임교수의 '취조'가 시작됐다. 하 교수가 이날 보도된 '서울대병원 정신과 교수들의 연구비 유용' 기사<"연구비로 제주관광"…제정신 아닌 서울大 정신과 교수들>의 제보자를 색출하려 나선 것이다.
이런 살풍경에 정신과 교수동은 하루종일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어떻게 이런 기사가 나갔냐'며 호통을 치기도 했다. 한 명씩 일일이 확인하며 '혐의자'를 좁혀나가려 하는 모습도 보였다. 기사가 보도된 후 정신과 교수들을 한 명씩 불러 심문했다. 한 후배 교수에겐 폭언과 욕설을 퍼붓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목소리가 교수실 밖 복도에까지 울려 퍼질 정도로 격앙돼 있었다고 한다. 하 교수는 제보자 색출에 혈안이 돼 이날 오후 1시에 열린 정신과 집담회에는 참석하지도 않았다. 오후 늦게 열린 교수회의는 연구비 유용에 대한 언론 보도로 평소보다 회의가 길어졌다. 하 교수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몇몇 교수들을 제보자로 몰아가는 듯한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오로지 제보자 색출에만 혈안이 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연구비 유용'에 대한 자성이나 개선계획에 대한 발언은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대해 병원 내부에서는 정신과 주임교수인 하 교수가 평소에도 자질과 관련해 평가가 좋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직원은 하 교수에 대해 "너무 독선적이고 이기적"이라며 "지난번 제주도 출장도 주임교수의 성화에 못이겨 마지못해 따라 간 교수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또 다른 직원은 "이번 사건이 고(故) 백남기씨 사건에 묻혀 조용히 넘어가길 바라고 있을 것"이라며 "저런 분이 주임교수직을 맡고 있다는 것은 서울대의 수치"라고까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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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된 연구기금을 집행한 의과대학 또한 진상파악은 뒷전인 모양새다. 의과대학에서는 기사가 나간 직후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워크숍 관련 내용을) 어떻게 알게 됐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누가 제보를 한 것인지를 알려달라는 것이다. "기사가 나간 배경을 파악하는게 먼저냐, 아니면 연구비 유용에 대한 내부 진상파악을 하는게 먼저냐" 되묻자 "미안하다"며 슬그머니 전화를 끊었다. 의과대학 또한 대학 차원의 진상파악과 대책 마련을 서두르기는커녕 연구비 유용 사실을 알린 제보자 물색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진상파악과 반성은 전혀없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용기 있는 행동을 한 내부 제보자만 색출하겠다는 발상이 상아탑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의료계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어느때보다 팽배한데다 그동안 전국 선도의료기관으로서 서울대병원이 쌓아온 두터운 신뢰를 감안하면 철저한 진상파악과 함께 그에 따른 후속 조치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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