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학 인터뷰]진징이(金景一) 베이징대학교 교수 겸 한반도문제포럼 주임
최근 3년 만에 평양 방문했더니 '충격'
마트 부식품 80~90% 북한산…중국산 찾기 더 어려워
음식점마다 인파 넘치고 밤 늦게까지 택시 행렬
경제 발전 힘 쏟은 결과 나타나는듯
[아시아경제 베이징=김혜원 특파원] "솔직히 조금 충격적이었습니다."
3년 만에 찾은 평양은 좀 낯설었다. 북한 경제가 절정에 달했던 1980년대 중반부터 북한을 방문했는데 이번에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광복상업중심 마트에는 부식품의 80~90%가 북한산 제품으로 가득 찼고 소주 종류는 어림잡아 60~70여종이었다. 수년 전만 해도 소주는 십수종에 불과했다. 오히려 중국산 제품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여러 종류의 쌀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고 해산물은 물론 과자나 사탕도 이렇게까지 풍족한 건 처음 봤다. 3층에서 성업 중인 식당은 북적이는 인파 속에 수십 여종의 요리가 눈길을 끌었다. 거리마다 음식점이 많이 들어섰고 밤 늦게까지 많은 택시가 다니는 것이 인상 깊었다.
진징이(金景一) 베이징대학교 교수 겸 한반도문제포럼 주임은 지난달 26~30일 평양을 방문한 후기를 생생히 들려줬다. 지난 9일 베이징대에 있는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진 교수는 아시아경제 창간 29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북한 사람의 표정이 무척 밝아 보였다"면서 "경제 발전에도 힘을 쏟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 아닌가 싶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진 교수를 통해 들은 '북한의 오늘'은 상상했던 모습과는 온도차가 꽤 컸다. 지난 몇 년 동안 국제사회가 북한의 잇단 도발에 맞서 각종 경제 제재를 가해 왔는데 북한 경제는 오히려 성장하고 있더란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그리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숙제인 북한 이슈를 풀어 나가는 데 있어 진 교수의 발언은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남북 관계는
文정부에 거는 기대 크지만 괴리도 커…진통기 겪을 것
北, 말 대 말 아닌 행동 대 행동 원해…한미 합동 훈련 축소도 하나의 방법
北 6차 핵실험 韓 대선 때문에 미뤄…향후 핵실험 감행 가능성은 커
-한국이 문재인 대통령 시대를 맞았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던가.
▲일단 기대가 크다. 그러나 기대감과 문재인 정부가 처한 현실적 한계 상황은 괴리가 있다. 남북한이 제대로 교류와 협력을 하려면 일정한 진통기를 겪어야 할 것 같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도 초기에는 힘들었다. 최근 대북 인도 지원 단체의 방북을 거부하는 것을 보면 북한은 더 큰 것을 바란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재개 같은 게 아닐까. 집권 2년차 이상 돼야 남북 간 이해관계가 어느 정도 밸런스(균형)를 이룰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살얼음판 위에 올라 선 동북아 외교 정세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북한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이 이전 정권과 어떻게 확고하게 다른가를 지켜보고 있다. "말로만 하면 우리(북한)도 행동은 없다"는 입장이다. 말 대 말이 아닌 행동 대 행동을 원한다. "도발을 멈추고 핵을 포기하면 도와주겠다"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이를 테면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말하는가.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을 중단 내지 일시 중지하거나 축소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을 하나의 산업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미국을 설득해야 할 문제인데 쉽지 않다. 진보 정권이기 때문에 북한과 대화하고 교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북한은 한국과 미국이 주동적으로 군사 훈련을 중지하거나 축소하면 그에 따른 행동을 보여줄 것이라고 한다.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하고 신뢰를 증진할 수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북한 문제 해법이 차일피일 미뤄지면 북한은 6차 핵실험을 감행할까.
▲꼭 하려고 할 것이다. 4월15일 태양절 때 하지 않은 것은 한국 대통령 선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번만큼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겠다는 기류가 있었다. 미국과 중국의 압박도 있었지만 한국 대선 전에는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 확고했었다. 하지만 6차 핵실험을 해야 핵개발을 완료했다는 의미이자 자국의 안보를 보장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시 중국의 원유 공급 중단 제재 가능성과 효과는.
▲원유 공급 중단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북한도 최악의 상황을 대비할 것이고 중국이 원유를 몽땅 끊는다고 해서 북한이 쉽게 무너질 것으로 보는 시각은 틀렸다. 북한은 주위에 러시아도 있고 산유국과의 관계가 좋아 얼마든지 공급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지금 국제 유가가 굉장히 싸기 때문에 밀수로 일정 부분 들여올 여력이 있어 보인다. 역대 한국 정부도 중국이 원유 공급을 중단하면 북한 경제가 당장 무너질 것처럼 여기고 요구하는데 글쎄다.
한중 관계는
사드 갈등은 제3국 탓
한국이 트럼프 설득 나서야
-한국과 중국 관계가 수교 25년래 최악으로 치달았다. 양국이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물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다. 사실 한중 양국이 갈등을 빚는 건 제3국 탓이 크다. 양국이 안고 있는 구조적 갈등이다. 사드는 미국이 전략적으로 접근한 것이며 중국을 겨냥했다는 것은 온 세상이 다 아는데 굳이 아니라고 변명해 봤자다.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고 결과적으로 하나의 큰 기지를 형성해 일본 오키나와·괌 기지와 함께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를 이루면 중국에는 전략 무기의 기능을 잃게 하는 큰 압박일 수밖에 없다. 큰 틀에서 중미 전략이 빚는 갈등이라서 문제 해결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사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해법이 있을까.
▲미국은 전략적으로 사드를 접근하고 있어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사드에 신경도 안 쓰는 분위기다. 오히려 사드 탓에 한중 관계가 나빠진 것을 즐기는 것 같더라. 사드 문제는 북핵과 남북·중미 관계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그만큼 사드 문제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 크다. 한국이 이 영향을 사전에 막아줄 것을 바라는 바다. 무엇보다 한반도 문제에 복합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야 한다고 본다. 남북한 문제를 가지고 미국을 설득할 나라는 한국뿐이다. 김대중 대통령 당시에도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끈질기게 설득해 강경했던 부시 마음을 돌렸다.
-양국 국민 정서도 많이 상했다.
▲사드는 외교 현안이고 두 나라를 넘어 국제 관계가 한 데 엮여 있는 복잡한 사안인데 국민 정서가 반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역사적으로 갈등의 골이 깊은 일본과도 지금은 큰 문제없이 교류한다. 한국 국민과의 감정도 풀릴 것으로 확신한다. 다만 사드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으면 움직이면 아픈 가시처럼 남을 것 같다. 한국에게 미국도 물론 중요하지만 남북한의 통일과 경제 블록화 과정, 그리고 그 결과에서 한중 관계가 가장 중요하게 대두될 것이다. 중국은 개혁개방 초기 한국의 발전 모델을 많이 받아들였다. 앞으로도 한국은 중국에 있어 지정학·지경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나라다.
-19차 당 대회 등 내부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다.
▲중국에서 당 대회는 가장 중요한 행사다. 두 차례(8차, 9차) 정도를 제외하고는 5년마다 꼬박꼬박 열렸다. 당 대회에서는 중국이 나아갈 총체적 목표와 전략을 설정한다. 대외 전략에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주로 국내 전략을 짜는 데 힘을 쏟는 행사다.
베이징 김혜원 특파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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