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회화의 ‘원초적 힘’ 담아
[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이건용 작가(75)에게 있어 ‘그린다’의 의미는 여타의 그것들과 다르다. 작가는 캔버스에 등을 기댄 채 팔이 뻗을 수 있는 만큼 그림을 그린다. 완성된 작품 안에는 거대한 얼굴 형태와 함께 우두커니 서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의 회화 작업은 화면의 뒤에서 또는 화면을 등지거나 화면을 뉘어놓은 채 이루어진다. 일반적인 작가의 위치와는 다르게 그린다는 점이 특이하다. 여러 제한 조건 속에 남겨진 그의 신체 흔적들은 독특한 회화적 언어를 가진다.
리안갤러리 서울은 오는 18일부터 7월 29일까지 한국 대표 행위예술작가인 이건용 작가의 개인전을 연다. 올해 제작한 신작 다섯 점을 포함, 총 스물한 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간 한국 60~70년대 아방가르드 예술 활동에서 이건용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의 회고전 ‘달팽이 걸음: 이건용’을 기점으로 최근 다시 이목을 집중시켰다.
작가는 퍼포먼스 작업의 일환으로 1976년부터 ‘신체드로잉 시리즈’를 시도했다. 하지만 전시는 그동안 퍼포먼스와 개념미술 작가로만 인식되었던 점에서 벗어나 좀 더 페인팅 작가로서의 면모와 작업이 지닌 전위성, 독창성에 집중한다.
최진희 전시기획자는 “작가가 추구한 ‘신체드로잉 시리즈’는 그간 ‘기록’ 기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회화’로 어떻게 인식이 되나 고민해봤다. 그간 오브제, 퍼포먼스 등 전방위적 활동을 했지만 그의 드로잉은 회화로 인식되지 않았다. 이번 전시는 ‘화가’ 이건용의 이미지 자체에 집중해 그 의미와 흥미를 찾고자 한다”고 했다.
작가는 자신은 의도하지 않았거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것, 예상치 못했던 것들 즉, 의외의 예술적 성과들까지도 담아내려고 한다. 이건용 작가는 “과거에는 우연과 실수를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은 실수도 하면서 우연과 만난다. 자기 안의 세계와 끊임없이 마주한다. 회화는 생각하는 대로만 결론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원시시대부터 지녀온 회화의 가능성을 (인류학적인 측면에서) 더욱 열어줘야 한다. 내 회화는 고도의 성과를 배제하고, 그 방법과 시간에 있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말인 즉, 누구와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보다 더 소통하기 위함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회화를 통해 ‘우리 신체조건이 '그린다'는 행위에 미치는 영향’, ‘몸의 조건을 매개로 해서 이루어지는 세계에 대한 인식’ 등 그만의 철학을 관객에게 보여주려 한다.
최 전시기획자는 “그의 회화적 이미지는 상당한 힘이 있다. 작가는 몸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신체로 풀어냈다. 우리의 인지(Perception)는 몸을 통해 비로소 가능하다. 회화에서 작가에게 몸이 얼마나 중요한 매체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김세영 기자 ksy1236@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