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임종석의 별명은 한때 ‘임길동‘이었다.
임종석 신임 청와대 비서실장은 19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3기 의장을 맡으면서 학생 운동의 중심에 섰다. 당시 임 실장은 학생운동으로 지명수배된 상황에서도 공권력의 추적을 따돌리고 신출귀몰한 행적으로 전국을 누비면서 임길동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②정치권 데뷔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론’
임 실장의 정치권 데뷔는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젊은 피 수혈론’에 따라 당시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하면서다. 임 실장은 그해 16대 총선에서 서울 성동구에 입후보해 한나라당의 4선 의원이었던 이세기를 꺾으며 파란을 일으켰다.
③임수경 방북사건 주도
임 실장은 한양대 총학생회장 시절 전대협 3기 의장으로 1989년 임수경의 방북 프로젝트인 '평양 축전참가'를 준비해 이름을 알렸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평양축전 참가를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대협은 극비리에 임수경을 제3국을 통해 파견했으며, 임수경은 1989년 6월 21일 서울을 출발해 일본, 독일 등을 거쳐 6월30일 평양에 도착했다.
④박원순 캠프에서 활약했고, 총선 경선에서 패배했다
임 실장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캠프에서 활약했다. 그는 당시 서울시 정무부시장에 임명되어 2015년까지 재직했다. 이후 총선 출마를 위해 사직했고, 은평구 을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임 실장의 경쟁 상대로는 정계의 거물인 이재오가 버티고 있었는데, 당내 경선에서 패하면서 출마 자체를 하지 못했다.
⑤1989년 6월 28일 이른바 ‘환상의 임종석 택’
학생운동권 은어로 ‘택’은 ‘전술’을 의미한다. 예컨대 과거 학생운동 당시 집회·시위가 벌어지면 집회 참가자들은 이 같은 택을 은밀히 주고받으며 경찰의 추격을 따돌렸다. 이 가운데 임 실장이 참가했던 이른바 ‘전대협 한양대 택‘이 있다. 일각에서는 ‘환상의 임종석 택’으로 부르기도 한다.
1981년 제3기 전대협 의장으로 활동했던 임종석 당시 한양대 총학생회장은 노태우 정권의 조기 퇴진과 평양에서 열리는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를 결의한다. 하지만 노태우 정권은 이미 한양대 일대를 원천봉쇄하고 지하철이 한양대역을 그냥 통과하게 하여 전대협 무력화를 시도했다.
이에 대해 전대협은 지하철이 다니는 시간 등을 정확하게 계산해 뚝섬역에서 한양대역까지 철로를 뛰어 한양대역에서 미리 준비되어있던 사다리를 타고 한양대로 진입하는 데 성공한다. 소위 ‘임종석 택’으로 불리는 이유는 임 실장이 당시 의장으로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뉴스본부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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