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신세대가 놀던 원조 카페거리…패티김 '장미의숲' 노래와 주병진 카페 '제임스 딘'으로 전성기
한껏 차려입고선 친구와 수다를 핑계로 나의 ‘멋짐’을 자랑하려 찾은 주말의 카페, 요즘에야 핫플레이스 하면 성수동이나 연남동, 서래마을 카페거리를 떠올리지만 80~90년대를 풍미한 카페거리 No.1은 단연 방배동이었다.
강북 멋쟁이 사로잡은 카페들의 매력
모래바람 휘날리던 허허벌판에 첫 카페가 생긴 건 78년, 이촌동에서 이사 온 카페 ‘장미의 숲’이 문을 열자 수고를 감내하고 강 건너 흙길을 뚫고 방배동을 찾은 강북 멋쟁이들 발길이 이어졌다. 가수 패티김을 비롯한 당대 명사들의 아지트로 이곳이 알려지자 작곡가 김준은 패티김에게 카페 이름을 딴 곡 ‘장미의 숲’을 선사했을 정도. 이후 벌판 위로 아파트가 들어서고, 코미디언 주병진이 카페 ‘제임스 딘’을 열면서 세련된 젊은이들이 몰려든 방배동 카페거리는 전성기를 맞았다.
세종대왕을 만든 형, 양녕의 안목(?)과 비행
카페이야기는 차치하고 그렇다면 동네 이름인 ‘방배’는 어디서 유래한 말일까? 이야기는 조선 태종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형님, 동생을 제치고 살육한 끝에 왕좌를 차지한 태종 이방원은 자신의 후사만큼은 ‘적통’의 명분을 세워 왕가의 권위를 세우고자 다짐했으나 세자의 행태는 눈뜨고 보기 힘들만큼의 비행과 방탕의 연속. 결국 태종은 세자를 폐위하고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니, 그가 훗날의 세종대왕이다.
야사에서는 세자 양녕이 일찍이 동생 충녕의 총명함을 알아보고 스스로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기행을 일삼다 폐세자 되고, 이후 궁에서 나와 도성을 등지고 남쪽으로 내려갔다는데서 방배(方背)이란 지명이 유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도성의 입구, ‘도구머리’
본래 방배동은 조선시대에 과천현 방배리 였고, 일제강점기엔 경기도 시흥군 방배리였던 것이 해방과 전쟁을 거쳐 1963년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며 비로소 서울의 일부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남태령 넘고 승방뜰 지나면 나오는 한양 어귀라 하여 도구머리 (都口頭, 수도의 입구머리)라고도 불렀는데, 우면산과 등지고 있는 동네라 방배(方背)라 했다는 설과 북쪽의 한강을 등진 모서리란 뜻으로 방배라 불렸다고도 전해진다.
방배동에 고분이 있었다?
개발되기 전, 방배동에는 조선시대부터 자리 잡은 몇 기의 고분이 있었는데 택지조성 공사 중 이곳에서 조선 초기 목우 6점이 출토됐다. 높이 7~8cm의 목우는 일부 부식된 부분을 제하고는 형태가 완전했고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채색의 흔적이 남아있어 조선전기 복식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사료로 보존됐으나, 고분은 사라져 지금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상태다.
디지털뉴스본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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