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 이념 차이 사라지고 복지·일자리 경쟁
너도나도 재정확대…추경마저 새 해법인양 등장
美 "韓 재정 보다 적극적인 역할" 권고하기도
재정확대 의견 분분…"재원조달 계획 공개해야"
[아시아경제 오현길 기자] 대선 후보들의 경제공약이 '재정확대'쪽으로 수렴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좌우와 단순한 중간 지대를 넘어선 통합적 리더십을 추구하는 트라이앵귤레이션(Triangulation·삼각화) 전략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공약이 대등소이해져 후보들은 재정확대를 통해 차별화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박근혜정부에서 무려 세 차례나 편성하면서 그 효력이 도마에 올랐던 추가경정예산(추경)마저 새로운 해법인 것처럼 선거판에 다시 등장했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복지재정 확대로 인해 정권마다 재정 규모가 100조원씩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조차 재정확대에 대해서 첨예하게 의견이 엇갈린다. 다만 재정의 역할에 대한 논란을 불러온 이번 대선은 우리나라 재정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계기가 된 것은 자명하다.
최근 대선 후보 간에 확장적인 재정의 역할이 요구된다는 주장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핵심 캐치프레이즈는 '복지'이며 경제회복과 일자리 확대가 뒤에 따라 붙는다. '증세없는 복지'를 주장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차별화하기 위한 지점인 셈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17일 “일자리 문제의 획기적인 전환을 위해 집권 후 즉각 10조원 이상의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 성서공단에서 발표한 '일자리 100일 플랜'에 대해 “2009년 위기 당시 17조2000억원 추경 편성, 2016년에는 9조7000억원을 편성했다”며 “지금 대한민국의 경제 민생위기는 역대 최악이다.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설명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는 중부담·중복지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세출 구조조정과 조세감면제도 정비 후 순차적으로 증세 논의를 계획하고 있다. 더욱이 복지공약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 한국형 노후소득 보장체계 구축 등으로 상당한 재정부담이 예고되고 있다.
서민맞춤형 복지를 주장하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매년 약 3.5%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는 예산 증가분을 저출산 해결과 청년복지를 위해 최우선적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도 불필요한 재정지출 절감과 중부담·중복지 합의에 의한 재원 확보를 내세우고 있다. 증세에 대한 입장은 다르지만 재정확대에는 모두 동의하는 셈이다.
국내 안팎에서도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이러한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미국은 최근 환율보고서에서 우리 정부에게 재정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권고했다.
미국이 한국의 내수침체로 인한 원화약세 문제를 지적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통화기금(IMF)도 꾸준히 재정집행 확대하라는 권고를 해오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흘려들을 수만은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재 재정규모는 충분하며 정부 지출을 늘리는 것은 부작용이 크다는 반대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정부 총 지출은 10년 전인 2007년 238조원을 기록한 이후 10년간 연평균 6.8%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 평균 성장률 3.3%의 두 배가량 웃돈다.
특히 세금이 잘 걷혀 재정여력이 좋을 때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조세재정연구원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별 재정정책의 경기대응성 추정 및 영향 분석' 보고서는 경기가 호황일 때 정부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늘려 경기과열을 방지하면서 재정여력을 쌓아두고, 불황일 때 정부지출을 늘리고 세금을 줄여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바람직한 재정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재정확대는 도리어 부작용만 심화시킨다는 비판론은 여전하다. 정부의 각종 지원금은 구조조정이 필요한 산업에 좀비기업을 늘리고, 자원과 생산요소가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재배분되는 것을 방해한다는 근거를 내세운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한국재정학회 회장)은 “재정정책은 순수한 경제 문제라기보다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정치적 과정에 가깝다”면서도 “각 후보 진영에서 재정확대만 제시할 뿐 재원을 어떻게 조달하느냐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아 실제 재정부담이 얼마나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점은 문제로 재원 조달 계획을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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