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생존법과 협력사의 희비
금단의 애플, 막대한 시장 지배력으로 거래
핵심기술 취득하고 꼬리 자르기
[아시아경제 황준호 기자] #1. 영국에 본사를 둔 그래픽 기술회사 이미지네이션테크놀로지는 최근 이 고객으로 부터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 지난 10년간 이 고객의 주력 스마트폰인 아이폰 태동부터 그래픽 프로세서를 공급해온 이 회사는 하루 아침에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 이 소식이 증시에 전해진 지난 3일 하루 간 이미지네이션테크놀로지의 주가는 72% 낙하했다.
#2. "우리는 여러분들의 궁금증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의 가장 큰 고객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하지만 우리와 고객 간의 정책에 따르면 우리는 고객과의 비즈니스에 대해 구체적인 것을 밝힐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제이슨 로드 시러스로직 CEO가 기업공개(IPO)에 나서면서 투자자들에게 전한 당부의 말이다. 투자자들은 시저스 로직의 매출에 3분의 2 가량을 공헌하는 이 고객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저스 로직은 아이폰의 오디오 칩을 공급하는 업체다.
#3. 포털 플레이어도 이 고객의 유명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의 오디오 기술 공급을 맡았던 회사다. 이 고객이 이 회사의 매출에 미치는 비중은 90%에 육박했다. 포털 플레이어의 CEO는 아이팟의 성공에 따라 2005년 12월 "우리는 업계를 리딩하는 이 고객과의 "강력한" 관계에 대해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 고객은 4개월 뒤 포털 플레이어와의 계약을 끊었다. 하루아침에 포털 플레이어의 가치는 반 토막이 났으며 이후 그래픽 칩 제작사인 엔비디아에 매각됐다.
논란의 주인공은 미국 시가총액 1위(약 7900억달러)를 기록하고 있는 애플이다.
협력사 입장에서 애플과의 거래는 일종의 '금단의 열매'다. 협력사들이 애플과의 거래를 이어갈 때는 성공가도를 달리는 것 같다. 하지만 애플의 계약 해지 통보 이후 협력사들은 재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벤처 투자회사인 롭 벤처스의 진 문스터는 "애플의 협력사에 투자하는 것은 '러시안 룰렛'을 하는 것과 같다"라고 비교했다. 그는 "이것은 악마와 하는 아주 전형적인 거래"라며 "협력사들은 애플이 주도권을 쥐고 좌지우지하는 것에 대한 대가를 치룰 것을 알면서도 거래를 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이같은 애플과 협력사와의 관계에 대해 심층 분석하면서 이같은 애플의 행태가 애플이 세계 일류 IT기업으로 살아남은 이유라고 분석했다.
애플의 협력사에 대한 일방적인 관계는 잔인해 보인다. 하지만 이는 애플이 늘 자신의 제품에 핵심 기술을 품게 하는 이유로 작용한다는 게 FT의 설명이다.
월가는 이같은 애플의 생존법에 익숙하다는 분위기다. 상장사 중 애플과 거래하는 협력사들의 경우 동종업계의 다른 기업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경향이 있다. 애플과 거래하는 상장 협력사들에게 이른바 "애플 리스크 디스카운트"가 적용된 셈이다.
최근 발표된 모건 스탠리의 애플 분석보고서는 "애플의 협력사에 대한 일방적 계약 해지 통보는 처음 일어난 일이 아니다"라며 "애플의 협력사들의 밸류에이션에 있어, 애플이라는 리스크가 상존하기에 가치를 낮게 책정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고 밝혔다.
수년간 애플 협력사의 CEO를 지낸 한 인물은 FT를 통해 "애플의 협력사들은 애플이 이미지네이션테크놀로지와의 계약을 해지했다는 소식에 금융권으로부터 자금 조달에 애를 먹기도 했다"며 "모든 은행들은 모든 애플 협력사들을 경계리스트(watchlist)에 올려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애플의 부품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라고 덧붙였다.
황준호 기자 reph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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