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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이트]시간의 틈 파고든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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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위의 집'으로 돌아온 21년차 배우 김윤진

[라임라이트]시간의 틈 파고든 여인 배우 김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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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와 60대 번갈아 연기…빠듯한 촬영 일정에 노인 분장만 세 시간
"열악한 조건 탓하고 싶지 않아…아직 갈 길 멀다는 생각뿐"
연기하지 않은 것 같은 연기가 목표 "대중 가슴에 다가가고 싶어"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또 세월을 건너뛰었다. 노역(老役). 배우 김윤진(44)에게는 낯설지 않다. 관객 1425만7115명을 모은 영화 '국제시장(2014년)'에서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영자의 노년을 연기했다. 자글자글한 얼굴이지만, 새 각시처럼 곱게 머리 빗어 쪽을 찌고 화창한 봄날을 맞는다. 김윤진은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으려고 실리콘 여섯 조각을 얼굴에 붙였다. 5일 개봉한 영화 '시간위의 집'에서는 얼굴에 풀을 바르고 말려 주름을 만들고 그 위에 검버섯을 그렸다. 남편과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지만 25년이 지나 진실에 다가가는 미희. 얼굴은 창백하고 몸은 빈약해서 병약한 인상이다. 실제 60대 여성과는 거리가 있다.


[라임라이트]시간의 틈 파고든 여인 영화 '시간위의 집' 스틸 컷

김윤진을 3일 서울 삼청동 카페 슬로우파크에서 만났다. 그녀는 "현실과 영화 속 설정은 같기 어렵다"고 했다. "등이 구부러지거나 수전증 등을 앓아야 관객의 이해를 도울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는 배우가 아닌 관객을 위한 것이잖아요. 어느 정도 범위에서 표현이 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40대와 60대의 미희를 번갈아 연기한 김윤진은 뚜렷한 구분을 위해 후두암에 걸리는 설정을 감독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미희가 놓인 상황을 보다 극적으로 보여주고, 관객의 동정심을 일찍 유발하기 위해 떠올린 생각이다. 익숙하지 않은 얼굴로 다른 목소리까지 내야 하는 고난도 역할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첫 등장에서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할 만큼 기력이 쇠약해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말수가 많아지고 움직임이 빨라진다. 극적인 사건을 마주하다보니 생기는 현상이어서 배역의 특징을 일관되게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김윤진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극이 진행될수록 대사가 많아져서 표현에 애를 많이 먹었어요. 감정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우선이다 보니 미희의 몇몇 특징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했죠. 아직 연기자로서 기술이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라임라이트]시간의 틈 파고든 여인 영화 '시간위의 집' 스틸 컷


사실 준비할 시간이 빠듯했다. 촬영은 스물다섯 차례(25회차)에 불과했다. 스케줄만 맞으면 한 달도 안 걸리는 시간이었다. 보통은 45~50회차까지 한다. 그뿐인가. 노인 분장에만 세 시간 이상 걸렸다. 심지어 40대와 60대의 미희를 모두 연기한 날도 있었다. 급박하게 진행된 촬영으로 한 장면을 세 번 이상 찍을 수도 없었다. 그녀는 변명하지 않았다.


"열악한 조건을 탓하고 싶지 않아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뿐이에요. 세부적인 표현도 그렇지만, 혼자서 비현실적인 상황을 이끌고 간다는 것이 많이 힘들더라고요. 한계를 극복하려고 애쓰지만 매번 새로운 어려움이 기다리는 것 같아요."


[라임라이트]시간의 틈 파고든 여인 배우 김윤진


그녀가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적다. 충무로에서 활동하는 모든 여배우들의 고민이다. 남자 주인공 중심의 영화가 주를 이루다보니 몇 안 되는 시나리오에서 새 작품을 골라야 한다. 김윤진이 그동안 참여한 작품들은 대부분 장르적 색채가 짙었다. '쉬리(1998년)'와 '하모니(2009년)', '세븐 데이즈(2007년)', '6월의 일기(2005년)', '이웃사람(2012년)'. 일상과 맞닿은 배역은 거의 그린 적이 없다.


"물 흐르듯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큰데 아직 그런 영화에 출연하지 못했어요. 근래 멜로영화가 제작되지 않다보니 그럴 기회가 거의 사라진 것 같아요. 예술성을 부각하다가 투자를 못 받는 경우도 흔하고요. 그래도 언젠가는 연기하지 않는 것 같은 연기로 대중의 가슴에 다가가고 싶어요. 배우로서 꺾고 싶지 않은 욕심이에요."


[라임라이트]시간의 틈 파고든 여인 영화 '시간위의 집' 스틸 컷


언제나 준비는 돼 있다. 그녀는 얼굴에 칼이나 주사를 대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에 기대어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연기를 꿈꾼다. 그러다보니 인상은 많이 변했다. 30대 중반까지만 해도 강인한 이목구비로 북한 저격수, 범죄심리분석관, 변호사 등을 맡았다. 최근 맡은 배역들에서는 절절한 모성애가 묻어난다. 시간 위의 집 속 미희를 비롯해 하모니의 홍정혜, 국제시장의 영자 등이다. 억척스럽던 얼굴에서 화기롭고 부드러운 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저도 여자인데, 당연히 얼굴에 신경은 쓰이죠. 잠을 푹 자고나면 생기는 베개 자국이 언제부턴가 반나절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거든요. 그 때마다 세월의 흐름을 체감해요. 치마를 입어야 하는 촬영을 앞두면 자국이 생길까봐 스키니 진 등을 입지 않죠. 선수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열심히 운동도 하고요. 음식도 오후 6시 이후에는 웬만하면 입에 대지 않아요."


[라임라이트]시간의 틈 파고든 여인 배우 김윤진


배우 21년차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연기를 향한 태도다. 배우라면 어떤 역할도 해내야 한다고 믿는다. 어려운 노역에 거듭 도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이를 먹었지만 내 본질은 바뀌지 않았어요. 시각이 조금 달라지긴 했겠죠. 스무 살 때 군인을 보면 아저씨 같았지만, 지금은 '어린 나이에 고생하네'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오니까요. 그런데 군인에 대한 이미지나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요. 다른 문제들도 마찬가지에요. 나이를 먹으면 성숙해진다고 하지만 본질이나 본바탕은 달라지지 않는 듯해요. 그래서 나이 많은 배역을 해도 부담을 덜 느끼는 것 같아요. 훗날 할머니가 돼도 지금의 생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테니까요."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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