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의 회장단, 주요 정당에 '대선후보께 드리는 제언' 전달
보수·진보학자 두루 자문…기업지배구조 개선·고용이중구조 해소 등 담아
[아시아경제 김혜민 기자] 경제계가 대선주자들에게 제언문을 전달한다. 기업인들의 요구만을 담은 '백화점식 위시리스트'가 아니다. 보수·진보학자로부터 두루 자문을 받아 미래경제를 위한 다양한 고민들을 담았다. 경제 핵심현안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해법을 함께 고민하자는 취지에서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한 상의 회장단은 23일 더민주당·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 등 5개 정당 당대표를 찾아 '제19대 대선후보께 드리는 경제계 제언문'을 전달하기로 했다. 상의는 제언문에서 "공정사회-시장경제-미래번영 3대 틀을 제안한다"며 주요 정당들이 대선과정에 이에 대한 대안을 고민하고 해법을 제시해줄 것을 주문했다.
이번 제언은 대선시기 마다 재계가 100여건의 탄원리스트를 건의하던 방식에서 벗어났다. 대신 9건의 국가 핵심어젠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방향을 제시하려 했다. 경제계가 국가발전에 책임감을 갖고 임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정부-정치권-경제계간 소통과 협업의 팀플레이를 주문한 것도 특징이다.
박용만 회장은 "특정 이슈에 대해 찬반을 얘기하는 것도, 절박감에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떼쓰는 것도 아니다"라며 "장기적으로 선진국 진입을 위한 변화, 누구나 지적하지만 고쳐지지 않는 정책, 시장경제원칙의 틀을 흔드는 투망식 해법 등에 대해 신중히 고민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번 제언문은 72개 전국상의를 통해 기업의견을 수렴해 만들었다. 기업편향성을 없애기 위해 보수-진보학자 40여명에게 두루 자문을 받았다. 경제단체로서는 이례적이다. 제언문은 총론에서 한국경제에 대한 진단과 해법의 방향, 경제계 다짐 등을 밝히고, 각론에서 '공정사회-시장경제-미래번영'의 3대 틀과 9대 과제 등을 제시했다.
경제계는 제언문을 통해 "기득권의 벽과 자원배분의 왜곡, 이로 인한 갈등의 골 때문에 노력이 아닌 '노오력'을 해야 하는 시대"라며 "금수저가 아니어도 노력하면 정당한 대우를 받는 한국경제의 희망공식을 복원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해답은 '기득권 내려놓기'라고 했다. 진입장벽을 높이 쌓아 도전을 차단하는 방법으로 이득을 손쉽게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불공정거래를 반복하는 일부 기업, 성과에 비해 과도한 임금을 상시적으로 요구하는 일부 노조, 자격증을 방패삼은 일부 고부가가치 서비스부문들 모두 기득권을 내려놓자는 것이다. 상의는 "기업들이 단순히 법을 지키는 것에서 한 걸음 나아가 법보다 엄격한 자율규범을 솔선하여 실천하도록 할 것"이라면서 "선진국처럼 기관투자가들이 기업을 잘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도록 스튜어드쉽 코드의 도입과 정착에 기업들이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에 대해선 '새정부 신드롬'을 경계해달라고 요청했다. 상의는 "정책시계가 5년이 아닌 10년, 30년을 내다볼 수 있어야 기업들도 그에 맞게 사업계획을 짤 수 있다"며 "미래 예측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현 정부의 좋은 정책은 정책 일관성 차원에서 계속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복지를 확대하되 지속가능한 방법론을 찾아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상의는 "복지수준을 확대하는 일에 대해 경제계도 찬성한다"며 "다만 부담이 따르는 만큼 중복지-중부담, 고복지-고부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복지재원은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을 통해 조달이 가능하다"며 "부담을 지나치게 높이면 경제가 위축되고 경제가 창출하는 가치샘이 고갈되면 복지재원도 고갈되는 만큼 이런 일은 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상의 자문위원인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경제에 대한 안정성이 확보돼야 미래 예측가능성도 높아져 기업들이 사업을 벌일 수 있다"며 "차기 정부는 일관적으로 정책을 펴 경제의 안정성을 높이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제발전의 핵심주체인 기업들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자성과 혁신의 노력들을 반드시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동근 상근부회장은 "정치시계가 빨라지면서 대선후보들이 자칫 선명성 함정에 빠질까 우려된다"며 "첫 단추를 잘못 채우면 국가전체적으로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 만큼 한국사회와 한국경제의 현실을 잘 진단하고 미래비전과 해법을 설정하는데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혜민 기자 hmee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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