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스위스의 시계산업이 수출부진에 빠졌다. 지난해 수출(금액기준)이 전년대비 10%가량 줄면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연간 200억 스위스프랑 아래로 내려갔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경쟁국의 위협, 스위스프랑 강세 등의 여러 요인이 있지만 중국의 반(反)부패법 시행과 자국산 보호제도가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8일 KOTRA 취리히무역관의 분석에 따르면 2016년 스위스의 시계 수출규모는 194억 스위스 프랑(22조3000억원)이며, 전년대비 20억 스위스 프랑(2조3000억원)인 9.9%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연간 수출액 규모가 200억 스위스 프랑 이하를 기록한 것은 2011년 193억 스위스 프랑 이후 5년만이다. 최근 불경기로 인해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약 15% 성장했던 시계산업은 2009년 글로벌 경제 위기 때 수준으로 돌아갔다는 평가다.
영국을 제외하고 10대 수출 대상국에서 모두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특히 중국 정부의 강력한 반부패 정책으로 고가 명품을 더 이상 뇌물로 주고받거나 은닉 재산으로 다루지 못하게 되면서 중국의 수요가 급감했다. 반부패법 시행 이후 중국과 홍콩에서의 스위스 명품시계 매출은 각각 25%, 22% 하락했다. 이로 인해 제1, 제3 수출대상국인 홍콩과 중국으로의 전체 수출규모가 각 25.10%, 3.30% 감소했다.
같은 정책에 영향을 받았으나 홍콩과 중국 대상 수출규모의 감소세가 차이가 나는 이유는 홍콩은 단가가 높은 럭셔리 최고급제품 중심이고 중국은 저급품 중심이기 때문이다. 특히 3000프랑 이상의 럭셔리 시계 매출이 12% 감소했는데, 이는 전체 시계 수출 감소분의 80%를 차지했다.
유럽 시장의 경우 잇달아 발생한 테러 사건으로 유럽을 찾는 관광객 수가 줄어들면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10대 수출대상국 중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로의 수출이 각 19.6%, 10.3%, 10.4% 감소하는 등 강한 위축세를 기록했다. .
2015년 스위스 중앙은행(SNB)의 고정환율제 폐지로 스위스 프랑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제품 제조비용이 상승했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됐고 수출에 주력하던 기업들은 타격을 받았다. 스위스 중앙은행의 고정환율제 폐지 발표 후 프랑은 유로화 대비 약 13%, 미국 달러 대비 약 12% 상승했으며 스와치 그룹 등 스위스 시계업체 주가는 평균 15% 이상 폭락했다.
세계 1위 명품 시계 그룹 스와치의 2016년 총 매출액은 75억5300만 스위스 프랑으로 전년대비 108%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53.6% 하락했다. 세계 2위 명품 시계 그룹 리슈몽은 2016년 말 250여 명의 인원 감축을 발표했다.
대내적으로는 럭셔리 시계기업의 독점체제와 사물인터넷(IoT)으로 옮겨가는 혁신 골든 타이밍을 놓친 것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스위스니스(Swissness)' 법안은 산업 보호라는 좋은 취지를 갖고 있으나, 경쟁력 악화라는 부작용 또한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2016년 스위스 연방각료회의에서 통과된 '스위스니스' 법안에 따라 기존의 50% 이상이었던 스위스산 부품 비율이 60% 이상으로 규격화되며 2017년 1월 1일부터 '스위스 메이드' 표식 부착 규제가 강화됐다.
스위스 시계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통과된 법안이지만 이러한 규제와 보호장치가 오히려 스위스 시계산업을 망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스위스 정부의 지원을 받는 스위스 최대 시계기업 스와치(Swatch) 그룹이 스위스산 부품을 독과점 하고 있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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