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문제원 기자]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김기춘', '조윤선', '차은택', '이재용'…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의 주ㆍ조연들은 눈에 보이는 곳에서 혹은 막후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우리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지금은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 파문과 직ㆍ간접적으로 연관돼 모두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대통령까지 제쳐버렸다는 대한민국 권력서열 1위 최순실, 시가총액 400조가 넘는 글로벌 기업의 총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50여년 8명의 대통령이 바뀌는 동안 권력의 핵심 혹은 주변을 기웃거리던 '왕 실장' 김기춘. 희대의 연쇄 살인범 유영철ㆍ강호순도 이곳을 거쳐 갔다.
'서울구치소'가 때 아닌 유명세다. 헌정 사상 전무후무한 탄핵정국을 몰고 온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의 주인공들이 나란히 미결수(未決囚) 신분으로 이곳에 구금돼 있는 탓이다.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에게 이곳은 '의왕대학원'이다. 그는 특검에 쓴 손편지에서 "의왕대학원에서 특검 사람들 생각하면서 가끔 '씨익 웃곤 해요', 힘든 시간 속에 너무 감사한 시간이었어요"라고 하기도 했다. 여기서 잠깐, 그런데 '서울'구치소는 왜 서울이 아닌 경기도 의왕에 있을까.
서울구치소의 전신은 서울 서대문구 금계동(현 현저동 101번지)에 있던 경성감옥이다. 1908년 7월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109년 됐다. 1912년 서대문감옥, 1923년 서대문형무소, 광복 이후에는 경성형무소,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 등으로 불리다가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 건 정확히 반세기 전이다. 1987년 11월 서대문에서 직선거리로 20km 가량 떨어진 경기도 의왕시 포일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구치소의 이전은 당시 꽤나 큰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구치소 이전에 당시 각종 서류를 운반할 라면상자 600여개, 트럭 30여대가 동원됐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3000명에 달하는 재소자들을 신속하게 이동시키는 일이었다. 당시 법무부는 이를 위해 안양, 수원, 의정부 등 인접지역 교도소의 출정(出廷ㆍ법정에 나가는 일)버스는 물론 여행사 버스까지 총동원했다.
구치소의 이전 사유는 '도시화'다. 도시팽창으로 구치소 담장 옆까지 주거지와 상업시설이 밀려들어오고, 부근의 유동인구가 늘어나면서 '혐오시설'에 대한 각종 민원이 폭증했던 것. 당시 중구에 있던 법원과 검찰 청사가 서초구로 이전하게 되면서 재판이나 조사 때 미결수 호송 편의를 위해 지금의 위치가 낙점됐다는 의견도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서울구치소는 시설의 노후화와 도심지 소재 교정시설의 교외이전 방침에 따라 현 소재지로 이전하게 됐다"며 "기관의 직무와 역할을 고려해 지명과 관계없이 이전 후에도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구치소가 지금은 '범털'들의 집합소지만 태생은 우리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제로부터 외교권을 박탈당한 대한제국은 이때부터 사실상 일제의 지배를 받게 됐고, 서울구치소의 전신도 제국주의 통치의 용도로 만들어져 활용됐다. 일제강점기 유관순, 안창호 등 독립운동가와 민족지도자들은 이곳에 투옥돼 모진 고문에 시달리다 운명을 달리했다. 광복이후 독재정권 시절 민주투사와 정치범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아이러니하게도 1974년 박근혜 대통령의 모친인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문세광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도 이곳에서 사형집행을 당했다. 박 대통령의 가슴 아픈 가족사가 스며든 이 곳 서울구치소. 지금은 박 대통령의 탄핵심판에 연루된 국정농단 관련자들이 수감돼 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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